<2009-09-15 격주간 제708호>
<4-H 역사 속으로…> 4-H 출신들이 새마을지도자로 농촌근대화 이끌어

새마을운동과 4-H운동

<새마을운동이 본격 추진된 1972년부터 '새마을4-H구락부'로 명칭이 변경되어 4-H경진대회를 개최했다.>
1970년대 들어와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4-H활동도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4-H운동은 새마을운동보다 24년이나 앞서 낙후된 농촌지역 사회개발에 농촌청소년이 주축이 되어 추진했다. 특히 해방 후 청소년들에게 지·덕·노·체 4-H이념과 네잎클로버 희망을 심어줬고 그들을 지역사회 리더로 키웠다.
그 결과 새마을운동이 시작되자 4-H이념과 ‘좋은 것을 더욱 좋게’, ‘실천으로 배우자’는 모토로 지역사회 지도자로 성장한 4-H회원 출신들이 새마을지도자로 우리나라 근대화의 역군이 되었던 것이다.
새마을운동은 71년부터 72년까지 기초조성단계로 새마을정신을 점화하는 한편 기초환경개선사업 추진에 역점을 두었고, 1974년부터 1976년까지는 자조발전단계로 농촌표준환경 정비와 농가소득원의 확대 그리고 도시새마을운동의 실천으로 전개되었다.
새마을운동은 새마을지도자를 중심으로 주민 전체가 주도하고 정부의 정책지원으로 주민 공통욕구를 해결하는 범국가적운동이었으며, 초창기부터 마을 개발을 단계별로 기초, 자조, 자립으로 육성했다.
새마을운동의 추진과정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새마을지도자 가운데 30% 이상이 4-H회원 출신이었고, 4-H활동이 활발한 지역이 마을발전의 수용태세가 빠르고 성과도 좋았다는 것이다. 새마을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4-H활동은 마을에서 새마을운동의 선도실천체로 활동하는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먼저 4-H의 명칭이 1972년부터 ‘4-H구락부’에서 ‘새마을4-H구락부’로 바뀌기 시작해 1979년에는 모두 변경되었다. 4-H활동도 과거 활동유형별로 A, B, C급으로 구분 육성하던 것을 새마을운동에 따라 기초, 자조, 자립단계로 구분 육성하게 되었다.
4-H회는 1970년 2만9803개에서 1975년에는 3만4698개로 확대되었으나 회원 수는 1970년 66만2000여명에서 1974년 58만7000여명, 1979년에는 49만8000여명까지 감소했다. 이것은 당시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이농현상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4-H회원 육성목표도 1960년대에는 유능한 2세 영농주 육성에서 1970년대에는 4-H이념이 투철한 후계새마을지도자 육성에 두었고 새마을지도자를 4-H회 책임지도자로 추대토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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