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01 격주간 제707호>
<4-H인의 필독서> 아름다운 날들

눈물겹게 아름다운 추억들과 다시 만나는 시간

그럴 때가 있다. 매사가 시들하고 재미있는 일이 하나도 없는데다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형국일 때는 누구라도 웃음을 잃게 마련이다. 이즈음 웃을 일이 없었다면 소설가 성석제와 만나보는 건 어떨까? 상상을 초월하는 상상력과 한바탕 웃음이 와글대는 작품을 읽다보면 세상 시름이 한순간에 날아갈 수도 있을 일!
이번에 소개하고 싶은 책은 읽는 동안 “키득키득, 으하하, 깔깔깔…….” 다양한 웃음을 쏟아내게 될 성석제의 장편소설 ‘아름다운 날들’이다.
성장소설이기도 한 이 작품은 “옛날 옛날에, 장원두라는 착한 소년이 살았습니다.”라며 옛이야기를 풀어놓듯 시작된다. 소년의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가장 큰 부자였고 마을에서 가장 복이 많은 사람으로 부러움을 샀다. 어찌나 복이 넘쳤는지 그 복이 동물에게까지 쏟아져 원두가 맡아 기르던 염소가 한 배에 네 마리의 새끼를 낳기도 한다. 원두는 나날이 불어나 40마리나 되는 염소의 풀을 뜯기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모자(母子)가 찾아 든다. 스무 살 남짓한 아들 ‘기타 리’의 기타 소리를 처음 들은 원두는 그 소리에 매료된다.
“딩동댕, 드르르릉 기타 소리가 났습니다. 저녁의 미지근한 공기 속으로 퍼져나가던 그 소리는 그 후 원두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아름다운 흉터를 남겼습니다. 그건 세상에 없는 소리가 낡은 소리의 껍질을 뚫고 공기 속에 새로 태어나는 것 같았지요.”
기타소리에 반한 원두는 가난한 ‘기타 리’를 읍민노래자랑대회에 출전시켜주려고 곳간의 나락을 훔쳐낸다. 도둑질이 들통 난 저녁, 원두의 눈물은 섬돌에 신발자국만한 얼룩을 만들었다. 긴장하고 있던 식구들에게 할아버지가 저녁을 먹으라고 하자 잔칫집처럼 부산하게 국수를 삶더니 자기들끼리 아귀아귀 먹었다. 허기지고 충격을 받아 반 기절한 아이에게 먹어보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군인을 싣고 전장으로 가는 기관차처럼 규칙적으로 씹고 삼키는 소리를 내가면서.
그날 밤 할아버지는 원두에게 “그놈 참 간도 크다. 크느라고 고생이다.”라는 한마디를 하셨고 그 한마디로 원두의 도둑질 사건은 마무리 됐다.
도시의 소시민으로 살던 원두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십 년이 지나 고향을 찾는다. 원두에게 맞기만 했던 한주, 깡다구네 수박밭에서 수박을 두 통이나 서리하다가 농업학교 운동장에서 된통 매를 맞던 한주는 자라서 건실한 농부가 되었다. 말더듬이에 코찔찔이었던 진용이는 인근 땅을 모두 제 것으로 할 만큼 부자가 된 것도 모자라 원두의 첫사랑이었던 운영 공주한테 장가까지 갔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모두 ‘아름다운 날들’인 것이다.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든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과 현재가 있다. 그 날 중 하루를 되짚어보자. 눈부시게 환상적인 한 장면이거나 아니거나, 추억할 수 있는 그 시간은 아름답다.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이 책을 통해 그 시간과 해후하기를 바란다. 
<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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