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15 격주간 제706호>
나의 사랑 나의 국토 (25)

‘인왕제색도’ 그림 새롭게 읽기
 박태순 / 소설가

조선왕조의 왕경 서울은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여 동쪽의 낙산(좌청룡), 서쪽의 인왕산(우백호) 그리고 남쪽으로 남산(안산)이 도성구성의 기본 골격을 이룬다. 이 4개의 산을 내사산(內四山)이라 부르기도 했다. 다른 한편 외사산은 북한산(진산)-용마산(동)-덕양산(서)-관악산(남)을 가리키는데 궁성과 도성의 외곽을 이루어 엄호해주는 형국이다. 서울 산수 중에서는 산만 아니라 ‘수’도 절묘하여 청계천과 한강본류는 태극무늬 형국으로 맞물려 이른바 ‘수태극’의 형세를 보인다.
서울은 평면적인 평원지대의 도시가 아니라 고저장단을 척척 맞추어 춤판을 벌이는 것 같은 문화지리학이 나름대로 호방한 도시라 할 수 있다.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는 실사구시의 학풍이 크게 일어나던 18세기 서울의 활기 넘치는 문예 진흥의 분위기를 감득할 수 있게 해주며 국보 제216호로 지정되어 있다. 1751년(영조 27)에 그린 작품이라 하니 정선이 75세 되던 때가 되는데 오히려 기운생동(氣運生動)의 운필(運筆)이 참으로 대단하기만 하다.
화가는 인왕산 동쪽 기슭에서 이 산을 올려다보며 수묵담채의 산수화를 그렸음을 알 수 있는데, 오늘의 청운동이거나 궁정동, 어쩌면 가회동 부근쯤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제색도’라는 것이 무슨 뜻일까. ‘제(霽)’라는 것은 한 여름철 소나기라도 한 줄금 퍼붓고 나서 날씨가 말끔히 개는 모습을 형용하는 단어이다. 비 갠 뒤의 햇빛과 달빛을 광풍제월(光風霽月)이라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는 산수 문인화가들이 참으로 사랑하는 바의 것이어서 누각이나 정자의 명칭으로도 널리 통용된다.
인왕산의 제색(霽色)이라. 이 그림은 우선 말끔하게 세수라도 하고 난 듯싶은 인왕산의 물색 좋은 산형(山形)을 실감나게 표현해낸다. 육안으로 직접 목도하여 사생(寫生)을 하는 기본자세를 통해 자신의 예술 혼을 한껏 발휘하고 있으니 ‘관념산수’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진경산수(眞景山水), 또는 실경산수의 화풍이라고 한다.
당시에 중국 화풍의 영향을 전혀 아니 받을 수는 없는 것이었지만, 겸제 정선은 이를테면 ‘조선산수화’, ‘서울산수화’의 구체성과 직접성을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화법을 구사해보게 된다.
수묵화에는 준법이라는 화법이 있다. 기암괴석이나 산의 주름살을 보다 뚜렷하게 표현하기 위한 기법인데 ‘겸제준’이 당대의 전범이 되었다고 했다. 겸제가 ‘금강전도’라든가 ‘인왕제색도’에서 독창적으로 선보였던 준법을 당대인들이 ‘겸제준’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서울은 오늘에 이르러 산수화, 문인화의 사경(寫景) 대상으로 과연 적합할까. 나는 ‘인왕제색도’를 로드맵으로 삼아 이 산을 새삼스레 답사해보고 싶다. 화강암 덩어리의 이 바위산을 나는 종로구 사직동이거나 무악동 쪽에서 또는 서대문구 홍제동 방향에서 무시로 오르내렸지만 가난한 동네의 뒷산 풍경 이상의 실감을 얻지는 못했었다. 더구나 김신조 청와대 습격 사건 이후로는 한동안 입산금지 구역이 되기도 했었다.
조선 후기에 인왕산 일대는 중인층 문인 화가들의 아지트를 이루고 있었고 송석원 시사(松石園 詩社)와 같은 유명한 문예모임도 있었다.
인왕산-북악산-낙산-남산을 잇는 내사산 트래킹 순환코스를 서울시가 조성한다고 한다. 서울의 문화-역사-자연을 인왕산에 탁월하게 담아내는 문예작품을 새롭게 만나고 싶다.

겸제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우리의 국토인문지리지를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16세기의 성리학적인 강호문학 국토관에서 더 진전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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