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을 빛나게 하는 ‘도전’
혼자서 무작정 설악산에 갔던 적이 있다. 그저 대청봉 꼭대기에 올라 눈잣나무를 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돌이켜보면 엄청 무거웠던, 어깨에 검붉은 멍을 남긴 배낭이 먼저 떠오른다. 무모한 용기까지 더해 잔뜩 짊어질 수밖에 없었던 나처럼 ‘나를 부르는 숲’의 저자 빌 브라이슨도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를 꿈꾸며 ‘잠시도 잊을 수 없는 무게’인 18kg의 배낭을 챙긴다.
뉴햄프셔 주의 작은 마을로 이사를 하고 우연히 마을 끝에서 숲으로 사라져 가는 길을 발견한 저자는 그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그 길이 애팔래치아 트레일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전체 구간이 약 3500km에 이른다는 애팔래치아 트레일. 3500km라는 길이가 실감이 나지 않을 터이니 조금 친절히 설명하자면,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의 백두대간 전 구간의 2.15배이고, 남한 구간만 따진다면 5배나 된다. 1500m가 넘는 봉우리가 350개나 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끝에서 끝까지 종주하는데 5개월이나 걸린다. 그 산길을 그냥 걷는 것도 아니다. 먹고 자고 생활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짊어지고 걸어야 한다. ‘잠시도 그 무게를 잊을 수 없는 18kg’ 배낭을 말이다.
이쯤 되면 저자가 대단한 체력의 소유자일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빌은 40대 후반이다. 그리고 ‘혼자 여행한다는 것이 가장 두렵고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했기에 친구인 카츠와 동행한다. 하지만 카츠는 알코올과 마약 중독에서 간신히 벗어났지만 비만에다가 가끔 발작을 일으킨다. 종주에 나선다고 선언하고 고가의 등산용품을 구비한 저자로서는 카츠라고 해도 마다할 입장이 아니었다. 게다가 카츠는 종주 자체보다는 종주기간이라도 먹고 살 걱정을 잊기 위해서 따라나선 참이라 꼭 종주해야 한다는 동기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이처럼 빌과 카츠의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처음부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포기는 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숲은 사라진 길 너머에서 우리를 부르고 있으니까. 그들은 걷고 또 걷는다. 숲은 끝날 듯 끝나지 않는다. 그 숲을 걸으며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발로 세계를 재면 거리는 전적으로 달라진다. 1km는 머나먼 길이고, 2km는 상당한 길이며, 10km는 엄청나며, 50km는 더 이상 실감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걷고 걸어도 그대로 숲인 곳. 오늘 이곳이 어제의 그곳인 것 같아 보인다. 거기에는 전에 맞닥뜨린 적이 없는 위험과 허탈과 동요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숲에서 새로운 무엇을 발견한다. 어떤 계절이든 아름답고 찬란한 숲의 온화한 힘, 세계의 웅장한 규모, 전에는 있는 줄 몰랐던 인내심과 용기, 그리고 친구까지.
빌과 카츠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완주하지 못한다. 하지만 저자인 빌은 책의 마지막 장에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린 3520 km를 다 걷지 못한 게 사실이지만, 여기에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게 있다. 우린 시도했다. 누가 뭐래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우린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었다.” 그렇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시도했다는 것, 그 자체면 된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빛나게 한다.〈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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