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에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계정리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보릿고개가 되자 마을 사람들은 양식이 똑 떨어졌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솔잎을 따서 김에 쪄서 말린 뒤 가루를 내어 떡을 만들어 먹었다. 또한 마 뿌리나 칡뿌리를 캐서 가루를 내어 국수도 만들어 먹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허기가 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노인이 말했다.
“솔잎이나 풀뿌리만 먹어서는 배가 고파 기운을 쓰지 못해요. 변비 증세도 심해지고요. 옛날에 우리 선조들은 심한 가뭄이 들면 하얀 진흙을 파서 좁쌀 가루를 섞어 떡을 만들어 먹었어요. 맛도 괜찮고 배도 불러 먹을 만합니다. 우리도 흙을 구해 먹는 게 어떨까요?”
“좋습니다. 하얀 진흙은 우리 마을 뒷산에 있어요. 제가 지게를 지고 가서 잔뜩 퍼오겠습니다.”
마을의 한 젊은이가 진흙을 지게로 날라 오자, 마을 사람들은 노인이 알려 준 대로 진흙에 좁쌀 가루를 섞어 떡을 만들어 먹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어려운 보릿고개를 잘 넘길 수 있었다.
주재소 순사들은 계정리 마을 사람들이 흙을 먹는다는 소문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람이 흙을 먹어? 그러고도 살 수가 있나?” “몸에 해로울 텐데. 흙을 구해 성분 분석을 해 보자.”
주재소 순사들은 계정리 마을 사람들이 먹는다는 진흙을 구해 경기도 경찰부 위생과로 보내 성분 분석을 의뢰했다. 경기도 경찰부 위생과에서는 전문가를 통해 진흙을 시험해 보고는 이렇게 알려왔다.
“하얀 진흙은 경기도 양평뿐만 아니라 함경도, 전라도 등지에도 나는 흙입니다. 규산 알미늄 성분이 들어 있어 먹어도 몸에 해롭지는 않습니다. 다만 영양가는 전혀 없고, 먹으면 배가 부를 뿐입니다.”
마을 노인이 말했듯이 우리 선조들은 흉년이 닥치면 흙을 파먹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함경도 화주(지금의 영흥)에는 황납 같은 진득진득한 흙이 있었다. 태종 때 심한 가뭄이 들었는데, 고을 사람들이 이 흙을 파내어 엿처럼 고아 먹었다. 그리하여 흉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평양속지’라는 책에는 ‘헌종 때 평안도에 대기근이 들어 평양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어 갔다. 이때 평양 잡약산 아래에는 달지도 쓰지도 않은 흙이 있어, 평양 사람들이 몰려와 떡을 만들어 먹었다. 대기근 뒤에도 이 흙을 먹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잡약산 앞을 지나가던 역졸들은 배고파 기운이 없으면 이 흙을 파먹고 기운을 차려 잘도 달려갔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 시대에 흙을 먹었다는 기록은 그 밖에도 많이 있다. 그 중에서 놀라운 이야기는, 영남 지방에 대기근이 들어 사람들이 쌀가루처럼 하얀 흙을 찾아내 떡을 만들어 먹었는데, 햅쌀이 나올 때가 되자 그 흙이 다 떨어졌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느님이 백성들을 구하려고 먹는 흙을 내려주셨다며 하느님에게 감사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신현배/시인, 아동문학가>
♠ 옛날에는 동물이나 사람도 흙을 약으로 먹었다면서요?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호랑이가 사냥꾼에게 독 묻은 화살을 맞으면 그 독을 풀려고 푸른 진흙을 먹었다. 또한 쥐도 독약 섞인 음식을 먹으면 흙탕물을 찾아 마셔 금방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흙은 사람에게도 약으로 쓰였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가마솥 밑에 있는 10년 묵은 황토를 ‘복룡간’이라고 부른다. 이 흙을 핥으면 코피가 멎고 혈변, 혈뇨가 그친다. 묵은 집 벽의 흙도 여러 가지 병에 잘 듣는다. 동쪽 벽의 흙은 설사에 잘 듣고, 서쪽 벽의 흙은 토하거나 딸꾹질을 할 때 잘 듣는다. 또한 진흙은 설사에 좋고, 붉은 흙은 귀신들린 병에 효과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정신병에 걸린 사람에게는 조상 무덤의 썩은 흙을 먹였다. 본인도 모르게 먹여야 효력이 있단다. 그리고 상사병에 걸린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의 집 마당에 있는 흙을 파 먹이면 효과가 있다고 한다. 흔히 상사병에는 약도 없다고 하는데 모르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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