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한 공포와 예리한 심리묘사의 조화
무더위, 한더위, 삼복더위, 불볕더위, 찜통더위, 밤더위, 강더위, 가마솥더위……. 지루하게 이어지는 여름 날씨를 묘사하는 말들이다. 견디기 힘든 여름을 잘 보내는 방법 중 하나는 추리소설을 읽는 일이 아닐까? 여름과 추리소설이 잘 어울리는 이유는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무섭고 스릴 넘치는 이야기 속에 빠지면 잠시나마 더위를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에드가 앨런 포의 단편 소설 ‘검은 고양이’는 추리 소설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에드가 앨런 포는 죽음과 공포, 불쾌감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대표작인 ‘검은 고양이’ 역시 인간 내면의 공포와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소설은 “지금부터 내가 쓰고자하는 괴기스러우면서도 꾸밈없는 이야기를 나는 사람들이 믿어주기를 기대하거나 간청하지 않는다”라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온순하고 인정 많은 나는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해서 많은 애완동물을 키웠는데 그 중 검은 고양이, 플루토를 가장 좋아했다. 나는 더할 수 없이 온순하지만 술만 취하면 폭군이 된다. 어느 날 나는 폭음을 한 상태에서 주머니칼로 고양이의 한쪽 눈을 도려낸다. 그 후 고양이는 나를 두려워하며 피한다. 처음에는 이런 상황을 슬퍼했지만, 그 감정이 점차 미움으로 바뀌어 고양이를 죽이고 만다. 참혹한 짓을 저지른 밤, 집에 불이 난다. 사람들은 고양이의 복수로 불이 난 것이라고 떠든다. 양심에 가책을 느낀 나는 플루토를 닮은 검은 고양이를 데려와 기른다. 하지만 이내 혐오감이 솟아올라 고양이를 죽이려다가 실수로 아내를 죽인다. 나는 아내의 시체를 지하실의 벽 속에 숨긴다. 그 후 고양이는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나를 의심하며 집안을 수색하던 경찰관들이 의심을 풀고 떠나려는 순간, 나는 무죄를 확신시키기 위해 떠들다가 아내의 시신이 있는 벽을 내리친다. 그러자 벽에서 고양이 울음이 들려온다. 작가는 그 상황과 고양이 울음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두드린 벽의 울림이 잠잠해지자마자 곧 무덤 속으로부터 응답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어린아이의 흐느낌처럼 짓눌린 채 간간히 끊어지는 소리였는데 - 드디어 외치는 소리로, 울부짖는 듯한 소리로 -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 저주 받은 사자(死者)들과, 그것을 기뻐하는 악마들이 함께 뒤범벅이 되어 공포와 승리가 반반씩 섞인, 지옥이 아니고서는 들을 수조차 없는 그런 통곡의 외침으로 울려오는 것이었다.”
‘검은 고양이’를 읽으며 문득, 그가 쓴 시 ‘애너벨 리’와 ‘헬렌에게’가 떠올랐다. 추리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시처럼 아름다운 문장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추리소설이 제격이다. 등골 서늘함으로 더위를 잊을 수 있다는 건 기본이고, 두뇌 회전이 원활한 혈액순환을 돕기 때문에 뇌 체조를 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서늘한 바람과 만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여름의 한 가운데서, 추리 소설을 읽으며 더위를 이기는 것도 좋겠다. <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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