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01 격주간 제703호>
<별난 한국사 이야기> 씩씩하고 용감하고 드세기로 이름난 발해 여자들

홍라녀는 발해 제11대 왕 대이진의 아들 대홀한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얼굴이 봄에 활짝 핀 복숭아꽃처럼 예쁘고, 허리는 실버들같이 가늘었으며, 살결은 백설처럼 희었다.
뿐만 아니라 퉁소를 기가 막히게 잘 불고 무술 솜씨가 뛰어났으며, 절개가 굳고 용감한데다 지혜롭기까지 했다. 그래서 왕은 늘 홍라녀에게 나랏일에 대해 의견을 묻곤 했다.
어느 날 왕은 홍라녀에게 물었다.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홍라녀가 대답했다.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나쁜 풍조를 없애야 합니다. 나라를 배반하는 자나 백성을 기만하는 자, 그리고 도둑질하는 자나 남의 아내를 빼앗는 자를 죽이십시오. 그러면 나라가 잘 다스려질 것입니다.”
왕은 홍라녀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자 정말 나라가 잘 다스려졌다.

남편을 구한 ‘홍라녀’

발해 서쪽에는 거란이 있어 발해를 집어삼키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어느 날 거란 왕은 왕궁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서 마차에 싣고 가던 발해 사람들의 물건을 빼앗더니, 협상을 하러 간 대홀한마저 자기네 나라에 붙잡아 두었다. 그리고는 “발해왕은 나라를 바치고 항복하라. 말을 듣지 않으면 대홀한을 처형하고 발해를 공격하겠다”는 협박장까지 보냈다.
그러자 씩씩하고 용감한 홍라녀는 혼자 말을 타고 거란으로 떠났다. 그녀는 보검을 휘둘러 그 많은 적을 무찌르고, 남편을 구하여 무사히 발해로 돌아왔다.
홍라녀의 이야기에 드러나 있듯이 발해 여자들은 씩씩하고 용감하고 드세기로 이름났다. 그런 기질은 절을 하는 예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발해 남자들은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데, 발해 여자들은 무릎을 꿇지 않고 절을 했던 것이다.
또한 발해 여자들은 모두가 사납고 질투가 심했다. 그들은 결혼을 하면 이웃 여자들과 의자매를 맺었다. 

발해 여인들은 질투도 심해

모두 10명이 의자매를 이루었는데, 이들은 함께 뭉쳐 다니며 남편들을 감시했다. 다른 여자를 만나거나 좋지 않은 행동을 하는지 말이다.
만약에 남편이 첩을 두거나 다른 여자를 만나면 의자매들은 절대로 가만있지 않았다. 떼 지어 몰려가 그 여자를 발로 차고 꼬집고, 흠씬 두들겨 팼다. 그래서 결국 남편을 만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물러나지 않으면 이들은 그 여자를 꾀어, 음식에 독을 타서 죽이기까지 했다.
발해 남자들은 여자들이 무서워서 한눈을 팔 수가 없었다. 그래서 통일 신라나 중국에서는 귀족 남자들이 첩을 많이 거느렸는데, 발해에서만은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
우리 역사에서 일부일처제의 가족 제도가 철저히 지켜지고, 여성들의 지위가 가장 높았던 나라로 발해를 꼽을 수 있겠다.
 〈신현배 / 아동문학가, 시인〉

♠ 조선 시대에는 경상도 고성 여자들이 드세기로 이름 높았다면서요?

경상도 고성은 깊은 산골에 있는 고을인데, 고성 여자들은 일 잘하고 똘똘 뭉쳐 다니기로 유명했다.
외지에서 온 장사꾼들이 물건값을 올려 받으면 이들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우르르 몰려가 거세게 항의하고 장사꾼들을 마구 두들겨 팼다.
수십 명이 팔을 걷어붙이고 죽자 사자 하고 덤벼들었기 때문에, 장사꾼들은 감히 대들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매를 맞았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고성 땅에서 그날로 내쫓겼다.
고성 여자들은 어찌나 기가 세고 드세기로 소문났는지, 개화기 때까지도 다른 지방에서는 며느리로 삼으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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