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하지만 행복한 행위 ‘걷기’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나는 맨발로 걷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도 없는 밤길이나 홀로 산길을 오를 때면 신발을 벗어들고 맨발로 걷곤 한다. 기관지염에 걸려 컹컹 항아리 기침을 하면서 마감을 지키고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지금, 맨발로 산길을 오르는 상상과 함께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을 펼친다.
‘걷기’라는 주제로 한 권의 책을 묶어낸 저자가 생각하는 걷기는 무엇일까? 그의 생각에 따르면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무런 목적을 가지지 않고 ‘그냥’ 걸을 때, 전에 알지 못했던 장소와 얼굴을 발견하는 기쁨까지 경험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걷기에 대해 정의를 내린 선구자적인 인물로 ‘스티븐슨’이나 ‘루소’, ‘소로’같은 이들을 들 수 있다. 그 중 한 사람인 스티븐슨은 진정한 걷기 애호가라면 구경거리를 찾아서 걷는 게 아니라 즐거운 기분을 찾아서 걸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루소의 생각은 좀 다르다. 그에게 있어서 걷기는 고독이다. 고독 속에 뜻하지 않는 만남과 예기치 않은 놀라움이 가득한 길을 걷는 것이야 말로 행복이라고 한다. 스위스의 솔로투른에서 파리로 혼자 걸어가면서 청년 루소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도보로, 그것도 혼자서 여행하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감미로운 공상들이 나의 동행이 되어주고 있었다. 내 뜨거운 상상력이 내게 이처럼 멋진 공상을 안겨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으며 이렇게 뿌듯하게 존재하고 살아본 적이 없었다.”
루소의 도보여행처럼 거창한 것이 아닌, 간단한 산책이라고 해도 걷기는 우리를 성급하고 초조하게 만드는 온갖 근심걱정들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 준다. 걷다보면 자신에 대한 감각이 되살아나고 쳇바퀴 도는 듯한 생활로 인해 가리고 지워져 있던 가치의 척도가 회복된다.
걷기는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여는 일이기도 하다. 사람에게 두 다리 이외에 다른 이동수단이 없었다면 사는 동안 그렇게 멀리 가는 일은 많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보행자는 스스로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 때문에 신중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했을 게 분명하다. 때문에 다른 이들을 정복하고 멸시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열어 보이려고 애썼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에서 가장 맘에 드는 구절은 “보행은 가없이 넓은 도서관이다. 매번 길 위에 놓인 평범한 사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서관, 우리가 스쳐 지나가는 장소들의 기억을 매개하는 도서관인 동시에 표지판, 폐허, 기념물 등이 베풀어주는 집단적 기억을 간직하는 도서관이다”라는 부분이다. 걷기가 유행이다. 몸을 건강하게 위해 걷는 이들이 많지만 나는 걷기를 사유(思惟)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헝클어졌을 때나 글이 풀리지 않을 때, 혼자 걸음으로 문제가 해결 되는 것을 경험하는 순간, 걷기야 말로 건강한 사유(思惟)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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