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15 격주간 제702호>
<별난 한국사 이야기> 뱀들과 함께 자고, 당나귀 귀를 가진 경문왕

역사책에는 왕이 특이한 신체와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경우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신라 진평왕의 키가 11척이고, 선덕여왕이 앞날을 내다보는 능력이 있으며, 고구려 동명성왕이 신기에 가까운 활솜씨가 있다는 둥 말이다. 이렇게 기록하는 것은 왕이 특별한 존재였음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특히 고대 국가 시기에는 그렇게 해야 왕의 권위가 세워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통일 신라 제48대 경문왕에 대해서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경문왕은 왕이 되자 뱀들과 함께 잠을 자는가 하면, 갑자기 귀가 당나귀 귀처럼 늘어났다나?
경문왕의 원래 이름은 김응렴이다. 18세에 화랑이 되었는데, 헌안왕은 그의 재주를 아껴 사위로 삼고 싶어 했다. 그래서 어느 날, 김응렴을 불러 이렇게 물었다.
“내게는 두 딸이 있다. 언니는 스무 살이고 동생은 열아홉 살인데 누구를 아내로 맞이하겠느냐?”
“부모님과 상의한 뒤 결정하겠습니다.”
김응렴은 부모님에게 왕의 말을 전했다. 그러자 부모님은 뛸 듯이 기뻐하며 둘째 공주가 좋다는 것이다. 둘째 공주가 첫째 공주보다 훨씬 아름답고 똑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응렴과 가까운 흥륜사의 스님은 의견이 달랐다.
“첫째 공주와 결혼하면 세 가지 좋은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왕과 왕비의 뜻을 따르는 것이니 그들이 기뻐할 것이고, 둘째는 왕이 아들이 없으니 왕위에 오를 것이며, 셋째는 왕이 되고 나서 둘째 공주도 왕비로 삼을 수 있을 겁니다.”
김응렴은 첫째 공주를 아내로 선택했다. 그러자 흥륜사의 스님이 말한 대로 세 가지 좋은 일이 다 이루어졌다.
헌안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그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침전에 뱀들을 불러들여 함께 잠을 자는 것이다. 깜짝 놀란 궁인들이 뱀들을 밖으로 쫓으려고 하자 경문왕은 그를 저지하고 뱀들을 가슴에 덮고 편안히 잠을 잤다.
그 무렵 경문왕에게는 큰 고민이 있었다. 갑자기 귀가 쑥쑥 자라더니 당나귀 귀처럼 되었다. 이 사실은 관을 만드는 복두장이 말고는 아무도 몰랐다.
“이 일은 너와 나만이 아는 비밀이다. 죽을 때까지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 만약에 비밀이 새어 나가면 네 목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복두장이는 죽기 직전에 도림사 대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해버렸다.
그 뒤 바람이 불면 도림사 대숲에서 이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경문왕은 이 소리가 듣기 싫어 대나무를 모조리 베고 산수유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경문왕이 다른 사람들보다 귀가 커서 당나귀 귀를 가졌다는 소문이 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백성들의 소리를 듣지 않고 독재 정치를 해서 이런 이야기가 생겼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당나귀 귀 이야기는 경문왕의 독재 정치를 비꼬았다는 것이다.
 〈신현배 / 아동문학가, 시인〉


♠ 진평왕은 우리나라 왕들 가운데 가장 키가 큰 왕이라면서요?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는 왕들의 키에 관한 기록이 나와 있다. 고구려왕들 가운데는 고국천왕이 가장 커서 9척이나 되었다.
삼국 시대에는 어떤 자를 사용했는지 모르지만, 고려 때 1척이 약 35센티미터라니 고국천왕은 키가 315센티미터, 즉 3미터가 넘은 셈이다. 백제왕들 가운데 가장 키가 큰 왕은 무령왕이다. 8척이니까 고국천왕보다는 1척이 작았다.
신라왕들 가운데는 진평왕이 금메달인데 무려 11척이나 되었다. 385센티미터니 어마어마하게 큰 키다. 진평왕은 키도 크고 몸도 커서 돌계단 세 개쯤은 가볍게 밟아 부수고, 그의 허리띠는 얼마나 긴지 구멍만 62개였다. 진평왕의 옥대는 신라의 3대 보물 가운데 하나였는데, 이 옥대가 신라에 있으면 신라는 망하지 않고 영원히 번영을 누린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고려를 세운 왕건이 신라의 경순왕에게 진평왕의 옥대를 달라고 해서 없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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