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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상 곤 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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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철이다. 논에는 이앙기로 모를 심느라 분주하고, 이앙을 기다리는 논에 채워진 물은 바람이 불때마다 찰랑인다. 가뭄에 그렇게 강하다던 대나무마저 말라 죽는 지독한 가뭄. 모내기를 앞두고 때마침 내리던 비를 보면서 마음을 쓸어내리고, 또한 비를 내려주는 하늘을 쳐다보고 감사해 한다. 하루를 멀다하고 새로운 기술의 진보가 이뤄져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시대에 이렇게 자연 앞에서 겸손하게 되는 것은 흙과 가까이 하는 자들에게 주신 신의 선물이 아닐까?
어린시절 우리 동네에는 놀이터가 있었다. 동네아이들은 학교 수업을 마치면 집에다 가방을 던져두고 약속이나 한 듯이 그곳으로 모인다. 그곳은 작은 공터를 무성한 잎을 가진 수백 년 수령의 느티나무, 팽나무 대여섯 그루가 에워싸고 있어 그야말로 천혜의 놀이터였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땅따먹기, 비석치기, 술래잡기, 오징어놀이, 돔구장 부럽지 않은 야구를 하다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저녁밥 짓느라, 소죽을 끓이느라 마을 여기저기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를 때가 되서야 마을까지 달리기 시합을 하며 하루를 마치던 날이 많았다. 그렇게 어린 시절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그 자리에서 4-H와 처음 만났다. 네잎클로버 속에 지·덕·노·체가 새겨진 표지석과 녹색으로 칠해진 간판은 자연스럽게 우리와 함께하는 존재가 되었다.
지난주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을 읽었다. 사람에게 있어 중요한 세 가지를 꼽으라면 대부분 ‘의·식·주’를 꼽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한 가지를 선택하라면 먹는 것을 이야기할 정도로 먹는 것은 중요하다. 이 책은 세계가 생산해내는 식량의 양은 전 인류를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음에도 불고하고, 정치적, 경제구조적인 문제로 지금도 10세 미만의 아이들이 5초에 1명꼴로 굶어 죽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4-H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당장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도, 기부를 위해 구호단체에 문의 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행복의 파랑새를 자신의 집 문 앞에서 발견한 것처럼 4-H이념의 실천 속에서 길을 찾아본다. 세계 굶주림의 이유가 정치적, 경제구조적인 문제라면 이는 정치와 경제를 움직이는 사람의 문제이고, 더 나아가 오직 나만 아는 이기심이 문제이다.
이렇게 볼 때 4-H는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흙과 함께하며 그 속에서 생명의 소중함과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갖게 되는 4-H활동은 우리로 하여금 전인적인 사람이 되도록 도와준다. 나와 세상을 위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 그저 명석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아픔을 진심으로 나눌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봉사하는 사람, 이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몸을 건강하게 가꾸는 사람. 이런 4-H인이라면 내 이웃의 아픔과 멀리는 지구 저편의 죽어가는 아이들의 고통을 보고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칠곡군에서는 학생회원들이 국화기르기, 텃밭가꾸기, 요양원 봉사활동을 한다. 식물을 잘 기르기 위해 공부를 하고, 물도 주고, 요양원의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어깨를 주물러 드리기도 한다. 사소하게 보이는 이런 활동을 통해 나만이 아니라 이웃과 세계로 연결되는 가치를 부여해서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는 멋있는 4-H인이 많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칠곡군농업기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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