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01 격주간 제701호>
나의 사랑 나의 국토 (20)

삼남대로 옛길과 공주 금강 배다리
 박태순 / 소설가

삼남대로 옛길을 되살려내려는 시민운동이 전개돼 왔는데, 이 대로의 ‘삼남’은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충청-전라-경상의 3도는 서울 남쪽에 있어 ‘하(下)삼도’라 하였거늘, 이러한 3도로 통하는 옛 길을 일컫는 것이었다. 우선 삼남대로의 중요 길목이 어찌 되는지 짚어볼까. ‘춘향전’에는 이몽룡이 암행어사를 제수 받고 급히 서울을 벗어나 남원 땅으로 춘향 만나러 내려가는 노정기가 나오는데 그 사설을 잠깐 옮겨본다.
“남대문 밖 썩 나서서 청파역 말 잡아타고, 칠패-팔패-배다리 바삐 넘어 밥전거리 지나 동작이를 얼른 건너 남태령을 넘어 과천 읍에 중화(中火)하고…….”
삼남대로의 터미널이라 할 곳은 남대문 밖 청파역이었다. 거기에는 버스 대신 역마들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마패를 가진 이도령이 여기에서 말에 올라탔음은 물론이겠다. ‘밥전거리’라는 곳은 먹자골목이겠는데 동작대교를 건너기 전의 한강변에 이런 식당가가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남태령이라니, 서울 사당동에서 과천시로 넘어가는 고개가 아닌가. 삼남대로로 내려가는 큰 고개라 해서 남태령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인데, 과천시가 ‘관문도시’임을 내세우면서 이 옛길을 마사토 숲길로 복원해 놓고 있다. 뿐인가, 서울시와 경기도가 합심하여 추진하는 행사가 있다. 정조대왕이 경복궁에서 화성(수원)으로 가던 반차(班次) 행렬 거리축제를 되살려 내려는 것인데, 이는 서울-수원 사이의 삼남대로 옛길에서 벌어진다.
수원을 지난 삼남대로의 다음 중요 길목은 바로 천안삼거리다. 전라도와 경상도와 서울의 세 갈래 길로 나뉘고 있어서 삼거리가 되는 것인데, 이 중에서 삼남대로는 천안에서 차령고개를 넘어 공주 쪽으로 뻗어 내리고 있다. 다시 ‘춘향전’의 사설을 옮겨본다.
“천안삼거리 지나 김제 역마 갈아타고 덕정, 원터, 광정, 활원, 모로원, 새수막, 공주 금강 휘끈 지나…….”
이 사설 중에서 ‘김제(金蹄)’는 지금의 도고온천 부근이고, ‘원터’는 차령고갯길 이북 쪽에 있던 역원 터이다. ‘광정(廣程)’은 차령고개를 넘은 과객이 공주목으로 들어가기 전에 쉴 참 내지 머물 참으로 들러야 하던 넓은 길바닥 동네였다. 모로원(毛老院)은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공주 관아 북쪽 25리에 있다 하였고, 북쪽 10리에는 일신역(日新驛)이 있다 하였는데, 이 역은 ‘춘향전’ 사설에 나오는 새수막이라는 곳임에 틀림없다. 그리하여 삼남대로는 이제 공주시를 통과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금강을 건너야만 한다. 동국여지승람은 금강 북쪽에 금강원이 있고 금강을 건넌 다음에는 공산성을 거쳐 웅진원에 당도한다 하였는데 두 원(院)은 모두 큰 저자거리를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섶다리는 섶나무를 엮어서 만든 다리를 가리킨다. 여러 나무들의 가지를 모은 것을 ‘섶’이라 하는데 이런 섶들을 모아 만든 섶다리는 한 개의 큰 통나무로 놓은 외나무다리와는 대조된다. 공주 금강의 섶다리는 배다리에 얹어놓은 것이었다. 강물에 여러 배들을 띄워 한 줄로 묶어 그 위에 널판을 가로질러 만든 배다리는 주교(舟橋) 또는 선교(船橋)라고도 한다.
2005년 10월 공주 금강에서는 배다리 위에 가설한 섶다리가 재현되어 답교놀이를 벌였는데 공산성 바로 앞강에 이런 다리가 있었다는 것을 나는 처음 알았다. 대략 25척의 목선들을 연결시켜 고정시키고, 그 위에 널빤지들을 덧대고 흙을 돋우어 삼남대로 옛길은 섶다리로 금강을 건너고 있었다. 공산성 공북루 앞쪽의 강물 속에는 섶다리 기둥 받침들이 아직껏 남아 있으니 여러분도 확인해 보시기를….

'공주 금강 배다리 풍속화'. 공주시 금강에 근대교량인 금강교가 건설된 것은 1933년이었는데 그 전에는 배다리 위에 놓인 섶다리가 삼남대로의 교통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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