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01 격주간 제701호>
<별난 한국사 이야기> 남녀노소 누구나 피운 ‘세상에서 가장 요망한 풀’ 담배

옛날 어느 고을에 빼어나게 아름다운 기생이 있었다. 이 기생을 한번 본 남자들은 홀딱 반해 상사병을 앓았다. 하지만 기생은 좋아하는 남자가 따로 있었다. 한 마을에 사는 선비였는데, 그는 이 기생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로지 글공부만 하는 것이다.
‘아, 선비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선비와 입이라도 한번 맞췄으면….’
기생은 선비를 간절히 사모하다가 그만 죽어 버렸다. 그 뒤 기생의 무덤에는 담배라는 풀이 자라났는데, 그 기생의 넋이 변한 것이었다.
선비는 기생이 자기를 짝사랑하다가 죽은 것을 알고는 기생을 가엾게 여겼다. 그래서 그 뒤부터는 무덤에 난 담배를 뜯어 입에 물고 다녔고, 사람들이 입으로 담배를 피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오랜 옛날에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담배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이 조선 제15대 광해군 때인 1616~1617년쯤이었으니 불과 400년도 안 됐다.
담배의 원산지는 아메리카 대륙인데 유럽에 전해져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 일본으로 건너갔고, 일본에서 조선으로 전해졌다. 담배는 조선에 들어온 지 5, 6년 만에 전국 방방곡곡에 널리 퍼졌다.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조선왕조실록’ 1639년(인조 16년) 8월 4일자에는 담배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담배는 병진, 정사년(1616, 1617년)부터 바다를 건너와, 처음에는 피우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더니 신유, 임술년(1621, 1622년)부터는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손님을 대할 때 차와 술 대신 담배를 내놓기 때문에 ‘연다(煙茶)’ 혹은 ‘연주(煙酒)’라 하고, 종자를 받아서 교역까지 했다. 담배를 오래 피운 사람이 백해무익한 것을 알고 아무리 끊으려 해도 끊지 못하니, 사람들은 담배를 ‘세상에서 가장 요망한 풀’이라고 일컬었다. 담배가 심양에 들어가자 그 곳 사람들도 아주 좋아했는데, 오랑캐 황제는 토산물이 아니라서 재물을 낭비한다고 해 명령을 내려 엄금했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 1808년(순조 8년) 11월 19일자에도 담배에 대한 기사가 나온다. 순조는 “담배가 소화를 돕는다, 담 치료에 좋다 하는데 확실히 모르겠다. 다만 담배를 피우는 것이 고질병이 되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고, 젖먹이를 면한 어린아이들까지 담배를 배워 황죽으로 피운다.”며 개탄을 했다. 실제로 1653년(효종 4년) 조선에 표류하여 제주에 살았던 하멜은 자신의 ‘표류기’에서 “제주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담배를 피운다. 어린아이들은 4, 5세쯤이면 이미 담배를 배우기 시작한다. 제주에는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기록할 정도였다.
아이들이 담배 피우는 것을 금하게 된 것은 화재 때문이란다.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면서 함부로 담뱃불을 버려 자주 불이 났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아이들에게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신현배 / 아동문학가, 시인〉

♠ 왜 어른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못하나요?

우리나라에서는 어른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는 풍습이 있다.
광해군 때 어전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하들이 피우는 담배 연기가 높은 곳에 앉은 광해군에게 자꾸 올라오는 것이다. 담배를 싫어하는 광해군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제발 내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마시오!”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때부터 지위가 높거나 나이 많은 어른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게 되었단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어전 회의를 할 때 담배를 피우던 신하의 담뱃불 불씨가 임금의 곤룡포 자락에 떨어졌다.
그리하여 큰 구멍이 났다. 이때부터 신하들은 임금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고 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양반 사회에서도 존귀한 사람이나 웃어른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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