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감자와의 대화
텃밭에서 감자가 자란다. 하루가 다르게 무성해지더니 꽃이 피었다. 땅속의 감자들은 무더위 속에 몸을 불리며 감자답게 커 가리라. 기특하다. 어쩌면 하지 무렵에는 감자를 캐서 쪄먹을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어보며, 앙리 쿠에코의 ‘감자일기’를 읽는다.
이 책은 ‘감자일기’라는 제목이 주는 친근함과는 거리가 멀다. 차라리 독특하고 독창적인 일기라고 말하는 게 좋을 듯싶다. 저자인 앙리 쿠에코는 1988년 11월부터 1991년 9월 15일까지 자신의 화실 책상 위에 감자를 쌓아놓고 그 감자를 그리면서 감자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감자를 그리는 작업을 일기 형식을 빌어서 기록하고 있다.
북칼럼리스트 이현주씨는 나에게 이 책을 추천하면서 이런 조언을 했었다. “‘감자일기’를 재미있게 읽으려면 먼저 준비가 필요해요. 저자와 친해지는 게 필수죠. 앙리 쿠에코가 프랑스인이고 화가이면서 예술이론가라는 사실, 그리고 관념적이고 사소하다고 느껴지는 것들을 자꾸 파고들어 어떤 때는 약간 짜증이 난다 싶은 프랑스 에세이의 특징도 미리 각오해야 합니다.” 라고….
하지만 크게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다. ‘아, 세상에는 감자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성격은 좀 괴팍할 것 같군’, ‘얼굴에 자신이 없었구만!’, ‘좋은 생각이야’, ‘이게 뭐야’ 이렇게 추임새를 넣어가며 읽다보면, 어느 새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을 테니 말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감자는 정말 어머니 같다. 뚱보 어머니, 착한 어머니. 아, 순둥이 뚱보 감자! 당연한 얘기지만, 감자는 그저 천진스럽고 또 우스울 정도로 시시한 존재라서 대단한 환상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감자를 보며 그림을 그리면서 저자는 감자와 대화를 한다. 그는 감자의 침묵을 즐기는 편이지만, 간혹 그 침묵을 곱게 봐주지 못할 때도 있다. 비행기가 추락하든 지진이 일어나든 나 몰라라 싹만 열심히 틔워 올리는 것을 보면 그렇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저자에게 감자는 단순한 감자가 아니다. 그것은 일용할 양식이고 삶이며 예술이며 어린 시절인 동시에 어머니고 아버지이며 또한 여인들인 것이다.
“껍질을 너무 두껍게 깎지 말자. 껍질 벗긴 감자는 살가죽이 벗겨진 여인처럼 고통스러우니까. 얼음물 아니면 펄펄 끓는 물에 담가질 운명.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이 책에 등장하는 감자는 하나하나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우아한 로자, 렘브란트의 노모, 소시지, 뚱보 베르타, 통통이, 지쳐 쓰러진 것, 문둥이, 푸른 각질, 외눈이, 독녀, 초록 애송이’ 등의 이름을 붙여 보살피고 말을 걸고 귀를 기울이고 사랑하고 증오하고 싸우고 욕하고 헤어지고 장사지내고 그리워하며 바라보며 저자는 감자를 그리고 또 그린다.
맛있는 감자. 나는 감자가 좋다. 한 여름 뜨겁게 쪄낸 감자의 쩍쩍 갈라진 분의 단내를 맡으며 땀 흘려 거둬들인 감자를 먹고 싶다.
<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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