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
한국에서도 ‘박쥐’라는 뱀파이어 영화가 만들어졌다. ‘박쥐’는 다분히 서양적인 아이템인 뱀파이어 이야기를 한국적인 분위기 속에서 잘 녹였다. 뱀파이어의 공포적인 요소보다는 한국적인 삶, 종교, 가족, 그리고 사랑에 집중했다. 스웨덴 뱀파이어 영화 ‘렛미인’ 역시 공포적인 요소를 택한 것이 아니라 10대들의 사랑이야기를 감성적으로 녹여내고 있다.
‘렛미인’은 초대받지 않으면 절대 들어올 수 없는 인간의 공간에 ‘Lat Den Ratte Komma In(들어가도 되니?)’라고 허락을 구하는 뱀파이어의 언어이다. ‘렛미인’은 유혈이 낭자하지만 너무나 서글픈 사랑이야기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12살 소년 오스칼(카레 헤데브란트)은 친구들의 괴롭힘 때문에 현실이 버겁다. 항상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복수를 생각하며 범죄 기사를 스크랩할 뿐이다. 금발 머리에 나약한 체구의 몽상가 소년은 어느 날 옆집에 이사 온 또래 소녀 이엘리(리나 레안데르손)를 만나면서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검은 머리의 이엘리는 나약한 오스칼과 다르게 추위 속에도 끄덕 없이 강하다.
그런데 그 무렵 마을에 피가 빨린 시체들이 등장하면서 마을이 흉흉해지기 시작한다. 오스칼은 이엘리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점점 빠져들게 된다. 피에 굶주린 이엘리의 모습을 보면서 동정과 사랑을 동시에 느낀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이 맞이하게 될 불행이 예고된다. 하지만 주눅 들지 않고 점점 더 강해지려고 노력하는 오스칼.
‘렛미인’은 스웨덴 작가 욘 린퀴비스트의 베스트셀러 소설 ‘Lat Den Ratte Komma In’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어두운 원작의 세계를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은 하얗고 차갑지만 설레는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북구의 하얀 풍광, 섬뜩할 정도의 침묵은 가슴 시린 사랑이야기를 담기에 더 없이 훌륭한 배경이다. 공포영화에 등장할 만한 요소들은 모두 제거되고 아이들의 순수한 사랑만을 엑기스로 남겨놓았다. 영원할 수 없는 사랑의 슬픔은 눈처럼 하얀 아이들의 순수한 눈빛으로 다시 태어난다. 가녀리고 나약한 아이의 몸속에 숨어 있는 뱀파이어의 광기가 마치 순수함만이 남아 있는 아이들의 첫사랑의 열정처럼 보인다.
‘렛미인’은 북구의 눈 위에서 피어난 가슴 시린 사랑의 열꽃 같다.
〈손광수 /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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