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01 격주간 제699호>
<별난 한국사 이야기> 조선은 계꾼들의 천국

조선 후기 어느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마을 사람들 중에 소를 기르는 사람들끼리 한자리에 모여 계를 만들었다. 소를 도둑맞거나 소가 병들어 죽을 때를 대비해, 저마다 조금씩 돈을 내서 ‘소계’를 맺은 것이다. 만약에 소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생기면 곗돈을 타서 소를 다시 살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런데 계꾼 중에는 욕심이 많고 마음씨가 고약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곗돈을 타기 위해 먼 동네에 사는 팔촌을 불러 이런 부탁을 했다. “수고비는 섭섭지 않게 줄 테니, 내가 소를 팔러 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내 소를 빼앗아 가게. 그리고 소를 이웃 장에 가서 팔아 주고 말이야.”
그가 꾸민 대로 일은 척척 진행되었다. 그는 장에서 돌아오다가 강도를 만나 소를 빼앗겼고, 계주에게 말해 곗돈도 탔다. 물론 팔촌은 그가 시킨 대로 소를 팔아 주려고 이웃 장으로 달려갔고 말이다.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다고 했는데, 팔촌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어차피 사기극이니 관가에 신고하지 않을 테고, 그 약점을 노려 팔촌이 소 판 돈을 들고 줄행랑을 놓은 것이다.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었다.
소계뿐 아니라 돼지계도 있었는데, 시골 마을에서 먹고 살만한 집 주인은 자기 집 돼지가 새끼를 낳으면 가난한 집에 한 마리씩 나누어 주었다. 나중에 돼지가 자라 새끼를 낳으면 가난한 사람들끼리 한 마리씩 나누기로 하고 말이다. 이렇게 저마다 기른 돼지가 자라 새끼를 낳으면 또 새끼를 한 마리씩 나누어 주고…. 이런 식으로 맺어진 사람들은 돼지계 계원들이 되어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다.
조선 후기에는 이처럼 계층과 거주지, 나이, 직업, 목적에 따라 다양한 계가 있었다. 같은 마을에 살면 동계, 이웃에 살면 통계, 혼사를 앞둔 자녀가 있으면 혼인계, 장례를 준비하는 사람이 모이면 상여계·관계, 같은 가문끼리는 종계, 어민들끼리는 어망계, 인력거꾼들끼리는 차계, 뱃사람들끼리는 선계,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끼리는 동방계, 청상과부들끼리는 청상계 등 수많은 계가 있었다.
특이한 계로는 요강계가 있었다. 말세가 가까워 오는데 재난을 면하려면 요강이 많이 있어야 한다나.
그래서 요강을 사기 위해 계를 만들었다. 또한 못된 양반들을 혼내 주고 복수한다는 검계, 주인에게 학대받는 노비들이 비밀리에 모인 살주계도 있었다. 심지어 젊은이들은 닭이나 돼지를 잡아먹으려고 계계, 돈계를 만들었으며, 코흘리개 아이들조차 떡이나 엿을 먹으려고 떡계, 엿계를 만들었다.
이처럼 나이, 직업, 계층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계모임이 있었던 것은 사람들끼리 친목을 도모하고 상부상조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은행이나 보험이 없던 옛날에는 푼돈을 모아 목돈이 되게 하는 데는 계만한 것이 없었다. 계모임의 전통은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와 서민들 사이에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신현배 / 아동문학가, 시인〉

♠ 조선 후기에는 마을마다 동포계가 있었다면서요?

조선 시대에는 모든 장정들이 나라에 군포를 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런데 이 군포가 너무 무거워 달아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관가에서는 달아난 장정을 대신하여 그 가족이나 친척, 이웃 사람들에게 군포를 물렸다.
이런 일이 거듭되자 마을에서는 동포계를 만들어, 저마다 형편에 따라 포목이나 곡식을 내놓게 해 모아두었다. 그래서 군포를 물릴 일이 생기면 관가에 바쳤다. 관가에서도 이 계 모임을 환영하여 거의 모든 마을에 동포계가 생겼다.
여기서 모인 재물은 이장이나 동장이 맡아 관리했다. 그런데 개화기 때는 마을 사람들이 이장이나 동장을 붙잡아 놓고 매를 때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 매를 동포매라고 하는데, 동포계에 모인 재물을 제멋대로 써서 벌을 받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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