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15 격주간 제698호>
<시네마&비디오> 그랜토리노

서부 영화에 대한 참회

1967년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이탈리아에서 만든 마카로니 웨스턴들이 미국에서 흥행몰이를 하면서 주인공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당대 최고의 스타가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감독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고, 1992년 ‘용서받지 못한 자’로 최고의 감독 반열에 오른다. 최고의 감독이 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올해 70세 후반의 노익장을 과시하며 서부영화의 장르적 특징을 그대로 따른 영화를 만들었다. ‘그랜토리노’이다.
자동차 공장에서 은퇴한 채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월트(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부인 장례식장에서 영화가 시작한다. 월트는 일본차를 팔고 있는 자식과 관계가 좋지 않을 뿐더러 강한 자존심 때문에 혼자 살기로 결정한다. 이웃과 가족에게 무관심한 월트는 이미 암 판정을 받은 상태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런 어느 날, 이웃집 소년 타오가 동네 갱단의 협박으로 월트의 72년 산 ‘그랜토리노’를 훔치려하다가 뜻하지 않게 월트를 만난다. 타오의 가족은 월트에게 사과를 하고, 그 대가로 타오는 월트의 집에서 일주일 동안 봉사를 하게 된다. 월트는 항상 눈에 가시 같았던 이웃집 지붕을 수리하는 일을 타오에게 시키면서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진다. 월트는 타오의 직장까지 알아주며 가족과는 누리지 못했던 따뜻함을 느낀다. 그런데 갱단이 타오와 타오의 누나를 공격하고, 분노한 타오는 복수를 준비하고 월트는 타오를 도울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월트는 타오를 속이고 혼자 복수를 위해 출발한다.
선과 악의 대결은 헐리우드 고전 서부 영화의 전형적인 원칙이었다. 그리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스타가 되었던 60년대 수정주의 서부영화는 선도 악도 존재하지 않는 영화였다. 1992년 ‘용서받지 못한 자’는 수정주의 서부영화의 변형이라면, ‘그랜토리노’는 바로 고전 서부 영화의 변형이다. 바로 선과 악이 뚜렷하게 존재하고 주인공은 악으로부터 고통 받는 선량한 사람을 구한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랜토리노’는 헐리우드 고전 서부영화와 판이하게 다른 결론을 만들어낸다. 바로 죽음을 통한 구원이다. 참회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아내의 유언을 절대 따르지 않았던 월트는 바로 타오의 복수를 통해 참회의 방법을 택한다.
‘그랜토리노’는 이미 80대에 가까워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생각 속에 가득한 죽음에 대한 해석이다. 그가 그동안 만들었었던 서부 영화의 주인공들이 한번도 하지 않았던 참회와 희생을 ‘그랜토리노’에서 해낸다. 〈손광수 /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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