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15 격주간 제698호>
<4-H인의 필독서> 정지용 전집1 詩

고향의 정취를 깊이 느낄 수 있는 시집

못자리 만드는 농부의 손길에 고향 들녘이 깨어나는 이 계절, 생생해진 논두렁 밭두렁을 거닐며 읽고 싶은 책이 있다. 정지용의 ‘정지용 전집1 詩’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 얼룩백이 황소가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시 ‘향수’의 첫 연이다. 문학평론가 최동호는 지용을 ‘한국 현대시의 성숙에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한 시인’으로 평가하고 있다. 쾌활하고 직선적인 성격을 지녔던 지용은 독설 또한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해방과 한국전쟁이라는 엄청난 혼란기,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전쟁 중에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한 그는 정치보위부에 체포,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납북됐다. 그 후 오랫동안 그의 이름을 언급조차 할 수 없었다.
1988년 해금과 함께 비로소 우리는 시인 정지용을 되찾았다. 1988년 1월 30일 ‘정지용 전집’ 초판이 발행 되었는데, 필자는 그 때 구입한 책을 지금까지 읽고 있다.
이 책에 실린 모든 시를 다 좋아하고 즐겨 읽지만, 학창시절에 지용과 첫 만남을 갖게 해준 시 ‘고향’은 좀 더 각별하게 느껴진다. 이 시는 1932년에 발표되었는데, 요즘 읽어도 새롭고 신선하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 산꽁이 알을 품고 /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 마음은 제고향 진히지 않고 /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 힌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 //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어린 시절에 가졌던 아름답고 신비로운 꿈은 성인이 된 지용에게는 남아 있지 않다.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우는 변함없는 고향에 와서 섰지만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지용은 먼 항구를 떠도는 구름처럼 쓸쓸하고 외로웠으리라.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지용은 동시도 썼다. 잘 알려진 동시에는 ‘별똥’, ‘해바라기 씨’, ‘호수1’, ‘호수2’ 등이 있다. 짧은 지면을 아쉬워하며 조금 덜 알려졌다고 생각되어지는 동시 ‘말1’을 소개하겠다.
“말아, 다락 같은 말아, / 너는 즘잔도 하다 마는 / 너는 웨그리 슬퍼 뵈니? / 말아, 사람편인 말아, / 검정 콩 푸렁 콩을 주마. // 이 말은 누가 난줄도 모르고 / 밤이면 먼데 달을 보며 잔다.”
동시이지만 사고는 웅숭깊다. 시인 김종길은 이 시의 마지막 두 행을 “한국 현대시를 통틀어서도 시적으로는 최고의 시구”라고 말했다.
어미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밤이면 먼데 달을 보며 슬픈 표정을 짓는 말에게 마음을 주어 새로운 인식을 이끌어 낸 시인 정지용. 마음의 고향마저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용의 시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행운이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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