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H육성강화방안(1)
1978년과 1979년은 4-H운동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해였다. 바로 4-H육성강화방안이 수립되고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이 강화방안에 따라 4-H의 명칭은 물론 조직 및 육성체계, 회원연령 등이 대폭 바뀌게 되었다.
1947년에 경기도 지역에서 처음 시작된 4-H운동은 전국적으로 확대되던 가운데 한국전쟁으로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후 다시 그 불길이 번지면서 50년대와 60년대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던 청소년들의 마음속에 지·덕·노·체 4-H이념으로 희망의 싹을 틔우게 되었다. 이때 4-H활동을 하면서 성장한 세대가 70년대 새마을운동을 이끌며 조국근대화를 앞장서 추진하게 되었다.
새마을운동의 성공요인은 이보다 20년 앞서 추진된 4-H운동이 길러낸 인적자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4-H는 다시 추진방향을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국가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산업화에 따라 농촌사회도 급속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특히 농촌청소년운동으로 추진되었던 4-H가 농촌인구의 급격한 이농현상으로 크게 위축이 되었고 영농후계자의 확보가 절실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농촌의 생산층인 청장년의 이농과 학생층의 4-H운동 참여율이 저조한데다 농업에 대한 가치관의 저하로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영농을 기피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1978년 초부터 4-H육성강화를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먼저 4-H의 현실과 정확한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1978년 2월 읍면당 1개 마을 기준으로 전국 1463개 마을에서 청소년들의 활동현황과 4-H출신자의 활동상황을 조사했다. 이 조사에서 나타난 현실과 문제점을 토대로 하여 같은 해 3월27일 중앙과 일선의 관계지도공무원과 산학협동에 관여하고 있는 대학교수 등 20명이 4-H강화대책협의회를 가졌다.
여기에서 토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4-H강화방안을 작성하여 4월에 농수산부장관에게 보고하게 된다.
또한 같은 해 6월29일부터 7월1일까지 3일간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YWCA버들캠프장에서 유관기관, 학계인사와 4-H지도자 45명이 모여 4-H육성강화세미나를 개최하였다.
그 토의 내용은 4-H조직강화 및 저변확대, 4-H교육훈련, 과제이수 및 활동촉진, 영농정착, 4-H민간지원활동강화방안 등이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호에 소개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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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YMCA버들캠프장에서 개최된 4-H육성강화 세미나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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