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01 격주간 제697호>
<별난 한국사 이야기> 큰범이라 불리던 김종서를 길들인 황희

황희는 인품이 너그럽고 청렴하여 모든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는 ‘허허 정승’이라고 불렸는데, 집에 있을 때 손자 손녀나 종의 자식들이 함부로 떠들거나 덤벼들어 수염을 뽑아도 “허허!”  웃기만 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이석형이 황희의 집에 찾아왔다. 이석형은 뒷날 대사헌, 판중추부사 등을 지내는데, 당시는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하녀가 차려온 술상을 두고 두 사람이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잠시 뒤, 갑자기 방문이 확 열리더니 어린아이 셋이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이 아이들은 종의 자식들이었다. “와, 녹두부침개다!”
아이들은 군침을 흘리며 술상으로 덤벼들었고 안주가 순식간에 동이 나 버렸다. 안주를 먹어치운 뒤 아이들은 황 정승의 뺨을 때리고 수염을 잡아당겼다. 그래도 황 정승은 “허허!” 웃고 있었다. 이석형은 이 광경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황 정승의 너그럽고 인자한 성품에 고개가 숙여질 뿐이었다.
그러나 김종서에게만큼은 무척 엄하게 대했다. 김종서는 함길도 관찰사가 되어 여진족들을 정벌하고, 함길도 병마도절제사를 겸임하여 육진을 개척한 대단한 인물이었다. ‘큰범’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성격도 괄괄하고 배포도 있었다. 그런데 황희는 김종서가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언제나 불호령을 내렸다. 그 때마다 김종서는 진땀을 흘리며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한번은 회의를 하는데 김종서가 술 냄새를 물씬 풍기며 나타났다. 김종서는 취기 때문인지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거만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때 황 정승이 하인을 불러 명했다.
“보료를 가져오너라. 그래서 김 대감의 다리를 받쳐 주어라.” 김종서는 얼굴이 빨개졌다. 이때 황 정승은 노기 띤 얼굴로 말했다. “김 대감! 조정에서 회의를 하는데 앉는 자세가 그게 뭐요? 전하 앞에서도 그러실 겁니까. 그것뿐이 아니오. 조정 대신이 모인 자리에 술을 마시고 오다니 그게 될 법한 일이오? 술에 취하여 나랏일을 보시겠다는 겁니까?”
김종서는 황 정승의 꾸지람을 듣고 몸 둘 바를 몰랐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느 날, 맹사성 대감이 황 정승에게 말했다.
“김종서의 체면도 살려 주셔야지요. 벼슬이 판서 아닙니까? 한두 번도 아니고 사사건건 나무라시니 참 듣기 민망합니다.”
“맹 대감, 제가 종서가 미워서 그러는 줄 아십니까? 저는 종서를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그의 성품이 매사에 신중하지 못하고 거친데, 잘 다듬지 않으면 안 되기에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겁니다. 종서야말로 우리 다음 세대를 이끌 큰 재목 아닙니까?”
황 정승은 그렇게 김종서를 잘 길들여 자신이 물러날 때 그 자리에 김종서를 앉혀 나라의 큰일을 맡겼다고 한다.
 〈신현배 / 시인, 아동문학가〉

♠“‘계란유골(鷄卵有骨)’이라는 고사성어가 황희 정승 이야기에서 나왔다면서요?”

황희 정승은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어 아주 가난하게 살았다. 세종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황 정승을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집과 쌀을 황 정승에게 주라고 신하에게 명했다. 하지만 황정승은 나랏돈을 축낼 수 없다며 그것을 받지 않았다.
세종은 다시 신하에게 “내일 새벽 남대문이 열리면, 하룻동안 그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물건을 사서 황희 정승 집에 몰래 갖다 놓아라”고 명했다.
신하는 다음 날 새벽 남대문으로 갔다. 그런데 공교롭게 새벽부터 하루 종일 비가 내려 도성으로 들어오는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저녁이 되어 남대문을 닫으려는데, 노인이 계란 한 줄을 들고 나타났다. 신하는 그것을 사서 황 정승 집에 몰래 갖다 놓았다. 하지만 황 정승은 계란을 하나도 먹을 수 없었다. 노인이 하루 종일 품고 있던 계란이라서 뼈가 생겼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온 말이 ‘계란유골(鷄卵有骨)’이다. 계란에도 뼈가 있다는 뜻으로, 늘 일이 잘 안 되는 사람이 좋은 기회를 만났으나 역시 잘 안 될 때를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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