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01 격주간 제697호>
<시네마&비디오> 슬럼독 밀리어네어

바꿀 수 없는 운명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빈민가에서 탄생할 수 있는 백만장자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다. 로또에 맞지 않는 이상 혹은 범죄를 저질러서 크게 한탕하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한 일이다. 운명처럼 맞아떨어지는 6개의 숫자 조합, 그 조합만큼 운명적으로 맞아떨어지는 백만 달러 상금이 걸린 퀴즈쇼의 문제들.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지점들과 엮인 문제들이 운명처럼 나오면서 모든 문제를 풀어내는 한 소년의 이야기다.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라는 인도 최고의 퀴즈쇼. ‘자말’은 퀴즈쇼의 최종단계까지 왔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①속임수로 ②운이 좋아서 ③천재라서 ④영화 속 이야기니까. 영화가 시작되면서 관객에게 질문한다. 인도는 아직까지 계급 제도가 남아있고 종교적 탄압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인도에서는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신분이 규정되고 벗어날 수 없다. 간디마저도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카스트 제도를 보면 인도의 계급은 절대 바뀔 수 없는 운명과 같은 것이다.
이슬람으로 태어나 어려서 가족을 잃고 형과 단둘이 빈민가를 헤매는 ‘자말’은 운명처럼 ‘라티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돈과 현실에 눈을 뜬 형은 ‘라티카’가 그들의 삶에 방해가 된다며 떼어놓는다. 여기서부터 ‘자말’은 ‘라티카’를 찾기 위해 긴 여정을 시작한다. 운명이라면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믿는 ‘자말’과 ‘라티카’.
백만 달러 퀴즈쇼는 바로 라티카를 찾는 자말의 긴 여정의 마지막 단계에 있다. 정규 교육을 한번도 받지 못한 자말은 자신이 살아온 삶 속에서 답을 찾아 맞히고 최종라운드에 도달한다. 그리고 어디선가 TV로 ‘자말’을 보고 있던 ‘라티카’는 ‘자말’을 만나기 위해서 암흑가를 탈출한다. 퀴즈쇼의 마지막 문제는 어릴 적 ‘라티카’에게 붙여주고 싶었던 소설 ‘삼총사’ 가운데 한 인물의 이름. ‘자말’은 그 인물의 이름을 알지 못했지만 4개의 답 중에 하나를 찍어서 맞히고 ‘라티카’를 만난다. 그리고 ‘자말’과 ‘라티카’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클라크 케이블과 비비안 리처럼 키스한다. 결국 처음에 던졌던 질문의 답은 ‘④영화 속 이야기니까’로 영화를 끝낸다.
세상은 태어나면서 부여받은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운명을 벗어나는 것이 가능한 것은 영화뿐이야’라고 말하는 고통스러운 영화이다. 누구도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손광수 /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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