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01 격주간 제697호>
<4-H인의 필독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깊은 통찰력과 낯선 언어로 사랑을 얘기하다

4월에게 ‘잔인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인 시인에게 묻고 싶다. 시를 쓰던 순간, 당신에게 사랑이 있었느냐고. 사랑 없는 4월은 황무지처럼 잔인할 수밖에 없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사랑에 빠져있거나 사랑에 빠지고 싶어 하는 이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문학작품 속의 사랑은 뻔하다, 진부하고 낡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래서 조금은 새롭고 신선한 사랑과 만나고 싶다면 책장을 넘기길 권한다. 이 책에 담겨 있는 사랑은 레몬에이드처럼 상큼하다.
소설은 영국해협을 날아가는 비행기에서 1인칭 화자인 ‘나’와 ‘클로이’가 989.727분의 1의 확률 속에 첫 만남을 갖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희박한 확률은 ‘낭만적 운명론’으로 이어져 나는 클로이를 필생의 사랑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클로이는 불안해하는 표정을 지었고 세련되지 않은 귀걸이가 어색해 보였지만, 걷잡을 수 없이 이상화(理想化)에 빠져든 내게 그녀는 사랑스럽기만하다. 클로이를 사랑하게 된 나는 그녀에게 갖는 감정이 정말 사랑인지 의문을 품는다. 그 의문의 출발은 ‘사랑하게 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점 때문이다.
클로이와 첫 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 그녀가 정성을 다해 마련한 식탁에서 나는 딸기 쨈을 찾는다. 나무 딸기 쨈, 검은 딸기 쨈 등 다섯 가지의 딸기 쨈이 있었지만 나는 딸기 쨈만을 고집하다가 결국 클로이와 언쟁을 벌인다.
나는 클로이와의 다름으로 인해 피곤해진다. 그녀의 과거와 배경은 매혹적이지만 괴상해 보였다. 모든 관계의 분열이 눈에 보이면서, 나는 익숙한 환경에 대한 향수를 느낀다. 하지만 만남이 반복됨에 따라 클로이와 나는 수많은 공동의 경험을 갖게 된다. 둘만의 언어를 공유하고, 유대관계를 강화해 가는 과정을 통해 두 사람은 둘만이 부르는 이름이나 언어, 행동의 의미 같은 것들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두 사람 관계에 접착제 역할을 해준다. 나는 클로이와 한 집에 살고 있지 않지만 둘만이 공유하는 하나의 세계를 창조했다는 생각을 한다.
허나 영원한 사랑은 없는 법. 클로이는 나의 동료인 윌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나를 떠난다. 실연을 당한 나는 자살을 계획한다. 자살의 목적은 죽어가는 나를 보며 슬퍼하는 클로이를 보는 거다. 그 순간 나는 생각한다. 내가 클로이에게 얼마나 화났는지를 보여주려면 나는 죽어야 한다고. 그러나 내가 클로이에게 준 충격을 보고 화를 풀려면 나는 살아있어야 했다.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자살을 포기한다.
실연의 상처에 가장 좋은 약은 시간이다. 낙타는 시간을 따라 걸어가면서 짐이 점점 가벼워진다. 등에 실린 기억을 사막에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시간의 치유 속에 클로이 없는 삶에 익숙해진 나는 다시 새로운 사랑에 빠진다.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소설이면서 사랑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는 책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으면서 이 봄, 사랑을 이루시라!
<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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