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매화문화축제와 섬진강
박태순 / 소설가
“광양에 오시면 여러분도 매화가 됩니다.”
“매향(梅香)과 시향(詩香)이 섬진강에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섬진강변에서 매화축제가 열린다. 벌써 13회째를 맞이하며 축제기간은 3월 14일부터 22일까지 9일간이다.
인터넷에는 아예 검색창구가 떠있는데 매화 사진이 매혹적이면서 유혹적이다. 더구나 내년에는 구례가 고향이었던 매천(梅泉) 황현 선생 순국 100주년이 된다면서 매화처럼 지조와 절개를 지녔던 매천 사상을 함께 기려보자고 이 축제 홈페이지의 안내 글은 밝혀놓고 있다. 광양 매화의 매향과 매천 황현 선생의 시향은 함께 순결하고 고결하다.
남해안 고속도로를 달려가다가 보면 전망이 확 트이는 섬진강 휴게소를 만나게 된다. 전북 진안, 장수, 임실 땅에서 발원되어 남원, 곡성, 구례를 거쳐 온 이 강이 삼각주를 이루면서 바다와 뜨겁게 포옹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명장면의 경관을 보여주는 곳이다. 경남과 전남의 경계를 이루고 섬진강 강변로는 하동 쪽에도 있고 광양 쪽에도 있다.
여러분은 즐거운 고민에 빠지게 된다. 경남 하동 쪽의 지리산 섬진강 길로 접어들어 화개 땅으로 올라갈까, 전남 광양 쪽의 백운산 자락에 주렁주렁 매달린 강마을들을 먼저 순례해야 할까. 실은 둘 다 놓칠 수 없다. 매화축제는 광양 쪽에서 열리고 있으니 여기부터 실컷 구경한 다음 ‘남도대교’로 하여 섬진강을 건너 화개마을로 찾아들 수 있다.
화개수류(花開水流)인가, 수류화개인가. 섬진강에서 바라보면 수류화개이고 지리산-백운산에서 전망하면 화개수류라 할 수 있다. 둘 다 내 눈에 넣어보아야 한다.
“동국화개동(東國花開洞) 호중별유천(壺中別有天)”
동국의 화개동은 신선이 사는 항아리 속의 별천지이어라.
“선인추옥침(仙人推玉枕) 신세숙천년(身世宿千年)”
신선의 옥 베개 베고 잠들었다가 깨어나니 내 몸도 세상도 천년이 흘렀더라.
최치원은 지리산 속의 이상향 청학동에서 신선이 되어 학과 함께 하늘로 올랐다 했다. 물론 오늘의 지리산은 더 이상 신선의 산은 아니다. 그러나 화개수류의 지리산, 꽃 피고 물 흐르는 지리산은 남아 있고 살아 있다. 경남 산청군에는 유서 깊은 매화마을들의 매화가 지금도 피어나고 있다.
산청군 단성면의 단속사(斷俗寺) 절터 자리에는 정당매(正堂梅)가 매년 꽃을 피운다. ‘정당문학’이라는 벼슬에 올랐던 강희안(1419~64)·강희백 형제가 심었다는 매화라 하니 600년 수령이 되겠다. 단성면 남사리 예담촌의 ‘원정매’는 원정(元正)이란 호를 가졌던 고려시대 인물 하즙(1303~1380)이란 이가 심은 것이라 했다. 산청 시천면 사리에 있는 남명 조식(1501~1572)의 재실 ‘산천재’의 정원에 세워져 있는 나무를 ‘남명매’라 부르는데 매년 이 꽃의 향기가 이육사의 시구처럼 홀로 아득하다.
하동 쪽의 유서 깊은 매화들과는 달리 광양 쪽의 나무들은 엄격하게 구분하자면 개량종 매실 나무들이다. 꽃의 완상 보다는 열매의 다수확을 위한 품종들을 과실 농장으로 조성한 단지들이 섬진강을 따라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자연경제시대의 매화와 산업경제시대의 매실을 섬진강은 이처럼 양 겨드랑이에 끼고 있으니, 금년의 섬진강 물빛과 꽃빛도 마냥 아련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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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은 매년 어김없이 꽃대궐을 차려놓는데 매화축제와 벚꽃축제, 고로쇠 약수제, 철쭉축제가 차례대로 꽃전선을 이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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