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15 격주간 제696호>
<시네마&비디오> 워낭소리

위기의 시대 소와 아버지의 이야기

2009년 소의 해를 맞이하면서 금융위기라는 뜻하지 않는 힘겨움이 세상을 흔들고 있다. 9시만 되면 실업률과 디플레이션 뉴스가 공포감을 자아낸다. 욕심을 버리고 소처럼 일을 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듯 떠들어댄다. 묘하게도 근면과 성실의 상징인 소의 해에 우리는 이런 위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극장에서는 소에 관한 저예산 독립 다큐멘터리인 ‘워낭소리’가 흥행을 하고 있다.
평생 농사를 지어온 최노인에겐 30년을 부려온 소 한 마리가 있다. 평균 수명인 15년을 넘어 마흔 살에 가까운 소는 최노인의 자식들을 키우는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아직까지도 최노인에게 소는 재산이었고 농기구였고 친구였다. 최노인의 아내는 늘 남편이 소만 아낀다고 불만이다.
그런데 어느 날 최노인은 매일 함께 지내던 소가 죽음이 가까워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식들의 성화에 자신의 삶과 너무나 흡사한 소를 팔려고 시장에 나가지만 제값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냥 돌아온다. 그리고 묵묵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죽음을 기다린다.
‘워낭소리’는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처럼 농촌의 정서를 건드린다. 아버지 혹은 아버지의 아버지 고향인 농촌의 친근함이 영화 내내 보여 진다. 허리가 굽은 노부부, 쟁기질하는 소, 무심한 자식들, 투박한 손. 모든 이미지들이 흐릿한 기억 속에서 따뜻함과 죄스러움을 동시에 끄집어낸다. 소와 노부부가 공부시키고 키운 아홉 남매는 이제 자식까지 둔 중년의 사회인이 되었다. 노부부의 자식들은 그들의 자식을 위해서 소처럼 희생해야만 한다. 순환의 고리 속에 놓인 부모와 자식의 관계 그리고 삶과 죽음의 문제가 관객의 마음을 놓아주지 않는다.
‘워낭소리’는 다큐멘터리이다.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냉정하게 보여주는 형식이다. ‘워낭소리’가 기록영화 측면보다는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를 분명하게 가진 것을 보면 그 형식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기록 영화보다 극적인 편집과 감정을 동화할 수 있는 음악의 사용 등을 보면 다큐멘터리의 측면만으로 볼 때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소를 빗대어 보여주는 아버지의 희생과 삶과 죽음의 모습은 진실하다.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워낭소리’는 결국 가족을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다. 올해 흥행한 ‘과속 스캔들’ 역시 가족영화였던 것을 보면 위기의 시대에서는 가족을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인가보다. 〈손광수 /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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