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15 격주간 제696호>
<4-H인의 필독서>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중국의 기상나팔’ 르쉰의 주옥같은 글 모음집

봄으로 가는 길목이라서 내리는 비가 더욱 스산하게 느껴지는 오후, 루쉰의 산문집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를 펼쳤다. “길이란 무엇이던가. 원래 길이 없던 곳을 밟고 지나감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던가. 가시덤불을 개척함이 아니던가. 길은 옛날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있다.”라는 구절이 마음에 박힌다. 여러 번 이 글을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가슴 한켠이 뜨거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절망을 이겨낼 힘을 얻는다. 원래 없던 곳을 밟고 지나감으로써 생기는 길, 가시덤불을 개척하며 만든 길은 앞으로도 영원히 있을 길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기상나팔’이라고도 불렸던 루쉰은 소설 ‘아Q정전’으로 잘 알려진 근대 중국의 사상가이자 작가이다. 일본에 유학, 의학을 공부하던 중에 병든 육체보다는 중국인들의 병든 정신을 고치는 일이 더 시급하다는 생각으로 문학의 길을 걷게 된다. 글을 통해 민중을 계몽하고 일깨우고자 했던 루쉰은 역사와 인간을 새롭게 재탄생시키기 위해 중국의 현실을 철저히 해부하고 비판했다. 그런 그가 쓴 많은 글 중에서 좋은 것만을 추려 엮어 놓은 책이 바로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이다.
이 책을 펼치면 중국인의 어리석음과 병폐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루쉰과 만나게 된다. 그의 글에는 민중의 각성을 촉구하는 진심이 담겨 있지만, 모든 이에게 진심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개혁을 부르짖지 말고 돌 조각이나 헤아리라는 비난 속에서도 루쉰은 중국의 청년들이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얕은 물일지라도 바다를 본받을 수 있다. 다 같은 물이기에 서로 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뒤에서 돌멩이질을 하든 구정물을 퍼붓든 내버려두어라. 그것은 크나큰 모독도 못된다. 왜냐하면 크나큰 모독을 하자면 그것도 담력이 어지간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옛날을 흠모하는 자, 옛날로 돌아가라! 세상에서 떠나고 싶은 자, 어서 떠나가라! 하늘로 오르고 싶은 자, 어서 올라가라! 영혼이 육체를 떠나고 싶은 자, 어서 떠나거라! 현재의 지상에는 현재를 끌어안고 지상을 끌어안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도다.”라면서 무엇을 사랑하든 독사처럼 칭칭 감겨들고, 낮과 밤 쉼 없이 매달리는 사람에게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살기 어렵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이즈음을 대비한 듯 80여 년 전의 루쉰은 이렇게 일갈하기도 했다. “청년들이 금 간판을 내걸고 있는 지도자를 찾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차라리 벗을 찾아 단결하여, 생존의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는 것이 나으리라. 그들에게는 넘치는 활력이 있다. 밀림을 만나면 밀림을 개척하고, 광야를 만나면 광야를 개간하고, 사막을 만나면 사막에 우물을 파라. 이미 가시덤불로 막힌 낡은 길을 찾아 무엇할 것이며, 너절한 스승을 찾아 무얼 할 것인가?” 그렇다. 밀림을 개척하고 광야를 개간하고 사막에 우물을 파야하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다.
<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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