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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1 격주간 제69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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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나의 국토 ⑭ |
동백꽃 섬마을, 그곳에 가보고 싶다
박태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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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염없이 울고 있는 듯한 거제 지심도 동백꽃. 남쪽 벼랑 ‘새끝’을 등지고 북쪽 벼랑 ‘마끝’ 돌출부에서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
동백(冬柏)은 겨울나무인가. 낙엽수가 아니라 차나무 과에 속하는 상록수이지만 제 이름에 겨울(冬)이라는 어휘를 달아놓고 있다. 사람들의 애정 어린 착각일까, 아니면 실제로 봄이 오기도 전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것일까. 일본에서는 동백을 춘목(椿木)이라고 부르는데 베르디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의 동백아가씨에 대해서는 ‘춘희(椿姬)’라 작명하기도 했다.
춘신(春信)이라 하고 화신(花信)이라 한다. 꽃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주는 것은 산수유라든가 생강나무, 개나리, 진달래, 매화, 수선화 등 얼마든지 많다. 잎사귀보다도 꽃을 먼저 피워 올리면서 봄의 전령사로 자처하는 꽃들의 경쟁은 꽃샘바람도 능히 이겨낸다. 피겨스케이팅 소녀 선수들 경연대회를 연상케 할 지경이지만 과연 동백꽃은 어떤 메달감이 되는 것일까.
옛 시인묵객들은 매란국죽의 사군자를 꼽으면서도 매화를 가장 으뜸가는 봄꽃으로 여겼고 농민들은 붉게 피어나는 진달래의 애처로운 모습을 사랑했다. 서양인들은 순백의 수선화가 풍겨주는 순결한 이미지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심성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 듯싶다. 옛 선비들은 동백꽃의 너무 정열적인 빛깔과 더구나 꽃이 지는 ‘낙화(落花)’가 아닌, 부러지는 절화(折花)의 모습에서 애처로움뿐만 아니라 처절함을 살폈던 것이어서 이 꽃을 저어하기도 했다.
하건만 현대인들은 보다 자극적인 것을 적극적으로 반기는가보다. 맵게 추운 날씨에도 빨갛게 핏덩이를 쏟아내듯 꽃망울을 터뜨리는 이 꽃에 대해서 ‘아우성의 눈물 꽃’ 이라고 설명해놓고 있는 인터넷 댓글을 볼 수도 있다. 아뿔싸, 하는 순간의 실수로 금메달을 놓치고 말았지만 관중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고 있는 피겨스케이팅 선수에다가 이 꽃을 비견시킨다면 어떨까 하고 나는 생각해본다.
대표적인 동백 군락지로서는 부산 해운대의 동백섬과 여수 오동도를 우선적으로 꼽게 되지만 실은 한려수도와 다도해가 펼쳐지는 남해안 일대의 모든 해변 마을들과 섬 마을들이 온통 동백마을들이라 할 수 있다. 내륙지방에도 물론 동백 숲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들도 많다. 나로서는 여수 돌산도 향일암 벼랑의 동백꽃 구경부터 시작하여 순천 낙안읍성에 들렀다가 선암사를 찾고, 이어서 전북 고창 선운사의 ‘육자배기 동백꽃’을 살피고,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의 몇 백년씩들이나 연세가 드신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169호) 속에서 심호흡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나 혼자만의 고독을 한껏 느끼면서 동백꽃을 만나고 싶은 이들에게는 거제도의 부속도서인 지심도(只心島)를 찾으라 하고 싶다.
500m 정도의 너비에 1.5km의 길이로 늘어져 있는 타원형의 조그만 섬인데 기암괴석의 해안선 둘레도 3.7km에 불과하다. 섬의 생긴 모습이 마음 심(心)이라는 글자와 비슷하다 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지만, ‘애오라지 한 마음의 순정’을 지닌 섬이라 새겨도 좋을 듯싶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시인 정현종은 ‘섬’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자신의 고독한 마음을 흡사 ‘독립만세’를 부르고 싶은 독립군처럼 섬에다가 비견시켰다. 지심도는 500~600살 너끈한 동백나무 숲이 울울창창한 터널을 이루어 ‘동백꽃 자유만세’를 부르고 있다. 사람이 자연보호를 해주는 게 아니라 자연이 자연보호로 동백을 해방시켜 주고 있다. 그러니 이 섬에 들어가거든 꽃 주인들에게 조공이라도 바치듯 공순해야만 한다. 실제로 내가 그렇게 하였는데 이에 나는 실토한다. 꽃보다 사람이 더 좋다는 시인도 있지만 나는 동백섬 지심도에서는 사람보다 꽃이 더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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