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외암마을 해토머리 풍경
박태순 / 소설가
2009년 새봄이 살금살금 다가오고 있다. 코끝에 매달리는 바람결이 한결 부드러워져 간다. ‘도둑고양이 걸음으로’ 찾아오는 것이 봄이라고 읊은 시인도 있었다. 24절기의 해당 날짜가 어찌 되는지 올해 캘린더를 들추어본다. 2월 4일이 입춘, 2월 19일이 우수, 3월 6일의 경칩, 그리고 춘분은 3월 21일이다.
‘입춘 지나 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리고’라고 하여 옛 속담은 얼었던 대동강이 해빙되는 때를 봄맞이의 기준으로 삼기도 했지만, 일반 시민으로서는 그 대동강이 과연 어떠한지 가볼 수 없으니만치 새로운 기준을 찾아야 할까. 한자로는 이러한 이른 봄을 맹춘(孟春)이라 하고 농민들은 따지기때, 또는 해토머리 무렵이라 부른다.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外岩里)에도 봄은 이미 도착되고 있다. ‘살아있는 민속박물관’인 외암마을은 일단 새마을운동이 아니라 ‘옛마을운동’을 일으키고 있다고 할까, 지켜내고 있다 할까 영판 다른 풍광이고 정취이다. 아산시와 천안시에 걸쳐 있는 광덕산(699m)에서 뻗어나온 설화산(441m)이 기다란 골짜기를 드리우고 있는데 그 끝자락에 이 마을이 매달려 있다. 넘실대는 파도 같은 쾌활한 흐름의 산하를 펼치는데 이러한 대자연의 환경에 소자연(인간)이 흔쾌히 순종하면서 유서 깊은 마을을 영글어 놓았다.
‘어서 오셔요 봄님이여’하는 환영사가 되는 것일까. 대문짝들에 먹물글씨들을 써서 붙여놓고 있는데 ‘입춘방’이라 한다. ‘천하태평춘(天下泰平春) 사해무일사(四海無一事)’라는 주련을 보았다. ‘천하가 태평한 가운데 봄이 찾아드니 온 세상에 근심걱정할 일 하나도 없다’하는 뜻이겠다. 금방이라도 세상이 무너질 듯 외환이니 금융이니 호들갑 떠는 판국 속에서 외암마을은 과연 어떻게 마냥 저냥 태평무사이기만 하다는 것인가. 타짜들의 호령을 비켜내게 할 무슨 묘안이라도 있다는 것일까.
바깥 경제에 예속되거나 종속되지 않는 자급자족 마을을 자작일촌(自作一村)이라 했다. 이런 마을에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이 있었다. 가난을 벗어나려 안달하는 게 아니다. 편안하게 가난에 머물고자 하는 까닭은 사람살이의 올바른 이치, 곧 도를 제대로 누리고 즐기기 위함인 것이었다.
현재 문화재청이 민속마을로 지정한 부락은 전국을 통틀어 여섯 군데이다.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 아산 외암마을, 순천 낙안마을, 고성(강원도) 왕곡 마을, 제주 성읍 마을. 앞의 세 마을은 반촌(班村)이 되는데 뒤의 민촌(民村)과는 문화경관에 차이가 있다. 외암마을은 예안 이씨들의 집성촌이지만 조선 유교문화와 농경생활의 경관이 어떠하였던지 여실히 보여준다. 으리으리한 기와집만 아니라 논틀밭틀의 초가와 장독대, 고샅길도 정겹기만 하다. 순전히 드라마촬영이나 관광객을 위해 상업적으로 시설해놓은 민속촌과는 다르다.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되레 더 좋아한단다. 참살이 한국문화의 눈맛과 귀맛과 입맛을 얼마든지 누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교산수’의 환경구조, 그린 필드의 취락구조, 한옥 공간구조, 농민생활과 농업생산의 순환구조 등등 살펴보고 탐구할 일들이 많다. 화가, 사진가, 연출가, 연행예술가 등 공간문화인들이 정기적으로 탐방을 하게 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누구나 이 마을에 들어오면 공간문화 연구자가 되는데 나 또한 그러한 연구를 위해 즐겨 찾아가곤 한다. 국토공간이 너무도 왜곡돼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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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南溪) 조정자 화백의 수묵담채 ‘외암마을 대춘부(待春賦)’. 잃어버린 고향을 되찾고 싶은 화가들에게 외암마을은 산수화의 본향이 되어주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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