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향한 이해와 관용이 만들어내는 숲
요즘 여행 관련 TV프로그램의 시청자가 늘고 있다. 현실의 짐을 내려놓고 당장 떠날 수는 없지만 대리만족의 기쁨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많은 이들이 여행을 꿈꾸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영복의 ‘더불어숲’을 펼치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여행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는데, 바로 떠남과 만남이다. 떠난다는 것은 자기의 성 밖으로 나오는 것이고, 만나는 것은 새로운 대상을 대면하는 일이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만 20년 20일을 복역해 온 저자는 1997년, 1년 동안 세계의 역사 현장을 탐방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곳에서 자신이 만난 세상을 엽서에 담아 보내왔다.
첫 번째 엽서를 스페인의 우엘바 항구에서 띄운 이유는 500여 년 전에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향해 출항한 항구이기 때문이다. 그의 출항은 단순히 황금과 향료에 대한 탐욕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데, 신대륙 원주민의 살육과 아프리카 흑인을 대상으로 한 인간 사냥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신대륙 발견 500주년에 있었던 가상 재판에서 콜럼버스는 유괴와 살인을 저지른 잔혹한 침략자로 단죄되고 ‘신대륙 발견’이라는 이름도 여지없이 폐기되었다. 그곳은 ‘신대륙’이 아님은 물론이고 ‘발견’이 아니라 ‘도착’이었기 때문이다.
이스탄불을 찾은 저자는 관용에 대해 말하고 있다. 관용이란 ‘자기와 다른 것, 자기에게 없는 것에 대한 애정’이다. 이스탄불의 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 사이에 앉아 띄운 엽서에는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담겨 있다. 1935년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던 소피아 성당을 박물관으로 개조하기 위해 벽면의 칠을 벗겨내자 그 속에서 예수상과 가브리엘 천사 등 수많은 성화들이 전혀 손상되지 않은 채 나타났다고 한다. 500년 동안 잠자던 비잔틴의 찬란한 문명이 되살아났는데, 그것보다 적군의 성을 함락시키면 3일 동안 약탈을 허용하는 이슬람의 관례를 깨고 소피아 성당을 지켜낸 이슬람의 관용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여행을 통해 수없이 많은 떠남과 만남을 경험한 저자는 여행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행이란 떠남과 만남의 낭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재발견이었습니다. 여행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정직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우리의 아픈 상처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정직한 모습으로, 아픈 상처로 돌아오는 것이 여행이기에 알지 못하는 것은 볼 수도, 만날 수도 없다. 때문에 저자는 여행지에서 만난 나와 다른 사람들의 삶과 그 삶의 방식에 대해 겸손한 자세로 다가가려 했다고 한다. 그들이 가난하건 무지하건…. 문화라는 나무, 문명이라는 나무, 그리고 사람이라는 나무. 그 하나하나를 인정하고 이해해야 거대한 숲을 이뤄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서 책의 맨 마지막 줄은 이 한 마디로 매듭을 짓고 있다.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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