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01 격주간 제693호>
나의 사랑 나의 국토 ⑫
연 날리기, 쥐불놀이, 지신밟기 ②
 박태순 / 소설가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로 되돌아 가보고 싶다. 춥고 배고픈 가난한 동네의 풍경일망정 미군이 버린 깡통에 화톳불을 담아서 돌리는 쥐불놀이, 패싸움의 석전(石戰), 그리고 연날리기와 연줄 끊어먹기를 하며 함성을 지르는 판타지 화면이 아스라하게 보인다.
‘연날리기 민속놀이를 되살리자’는 소리는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그럴 뿐 아니라 실제로도 여러 단체들이 주관하여 각종 대회가 벌어지곤 한다. 연은 과연 무엇이며, 우리는 왜 연을 날리고자 하는가. 현행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에는 ‘연 할아버지’라는 제목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할아버지는 가을아침에 연을 만드셨다. 할아버지는 연 머리에 꼭 태극무늬를 그려 넣으셨다. 할아버지와 성이는 가을걷이가 끝나면서부터 정월대보름날까지 연을 날렸다.”
연은 다른 이름으로는 지연(紙鳶)·풍연(風鳶)이라 하고, 또는 풍쟁(風箏)이라고도 한다. 우리말로 구태여 옮겨본다면 종이 연, 바람 연, 바람 거문고가 되는 것일까.
연날리기는 세 가지의 역할을 지녀왔다. 첫째로는 액막이의 주술적 기능이다. ‘송액영복(送厄迎福)’ 또는 ‘신액(身厄)소멸’ 따위 글씨를 써놓은 지연을 하늘 높이 띄워 올린 다음 아예 실꾸리를 놓아버린다. 곧 ‘액연’이라 하고 ‘액연 띄우기’라고 한다. 둘째로는 김유신이라든가 최영 장군 등의 경우에서 보듯 군사적 목적으로 연을 이용하는 경우이다. 그리고 셋째로는 유희의 기능인데 남북한 통틀어 전국적으로 즐겨온 겨울철의 놀이문화였다. 다만 대보름 이후로는 절대로 연을 띄우지 않는다. 만일 그랬다가는 ‘개연 띄운다’는 소리를 듣는 등 놀림감이 된다. 대보름이 지나면 바야흐로 농번기가 다가오게 되는데 더 이상 놀고먹을 틈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연은 전국적으로 70여 종류가 만들어지는데 방패연의 경우 윗부분에 검은 점을 찍은 것은 꼭지연이고, 반달 모양을 그린 것은 반달연이다. 태극연, 치마연, 동이연, 박이연, 발(足)을 붙인 발연 등이 있다. 발연은 발의 수에 따라 2발연·3발연·4발연으로 다양해지고, 더구나 발이 많은 국수발연·지네발연 등도 나오게 된다.
연줄은 3각추 모양으로 머리살 쪽에 맨 다음 ‘활벌이 줄’로 조이게 하여 한 줄로 연결짓는다. 연이 활처럼 굽어 궁형이 되어 있으므로 ‘활벌이 줄’로 매게 된다.
전남 나주시 동강면 옥정리 복룡마을의 대보름 당산제 잔치 마당에서 쥐불놀이를 즐기고 있는 아이들(황헌만 사진, 2005년).
방구멍내기-살 붙이기-줄 매기의 독특한 구성과 결합은 태극사상의 오묘한 활용이면서 조형미마저 갖춘 예술미학이다. 연줄을 풀고 감는 것은 얼레의 몫이 되는데 나무 기둥의 설주를 짜 맞추어 가운데에 자루를 박게 되는 구조이다. 설주가 몇 개인가에 따라 두모얼레(납짝얼레), 네모얼레, 육모얼레, 팔모얼레라는 명칭을 붙인다.
연실의 사개 먹이기란 무엇인가. 누가 얼마나 연을 높이 띄워 올리는가 하는 시합과 함께 뻬놓을 수 없는 것이 상대방의 연실을 끊어먹는 시합이다. 사기나 유리병을 빻아 사금파리로 만든 다음 아교나 부레풀에 묻혀 실에다가 입히는 것이 ‘사개 먹이기’였다.
민속연의 전통공예와 그 놀이의 민속문화를 지켜서 오늘에 계승시켜주고 있는 노유상(盧裕相) 옹이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연 할아버지’였다. 내가 그이를 찾아뵈었던 것은 1986년 1월 초순이었는데 ‘어린이가 되는 것, 어린이로 사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잃어버린 동심을 되찾게 해주는 것이 전통 연이라는 것이다. 우리시대가 이를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동심을 잃어버린 어른’만 사는 세상이어서 그러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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