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재·예술품의 고귀한 가치 깨달아
어느새 2월이다. 바쁘게 살았지만 이룬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면, 쓸쓸해져서 문득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소리가 그리워진다. 더욱이 소백산 기슭에 자리한 부석사의 무심한 풍경소리여야 한다는 까다로움까지 부리고 싶어진다면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펼쳐 읽어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은 ‘최순우 전집’에 수록된 글 중에서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누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게 쓴 글들만 모은 선집이다. ‘이슬보다 영롱하고 산바람보다 신선한’ 저자의 글은 읽는 이로 하여금 아름다운 우리말의 향연에 빠져들게 하고, 이어서 우리 문화재와 예술품의 고귀한 가치를 깨닫게 해준다.
표제와 같은 제목의 글인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읽으면 그곳에 가지 않고도 더 생생하고 깊이 있게 부석사를 거닐게 된다. 저자는 안개비에 촉촉히 젖은 무량수전과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이 지니고 있는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면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고 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우리 문화유산이 지니고 있는 참 멋과 조상들의 안목에 대해 사무치는 고마움을 품고 감개무량해 하는 저자와 자주 만나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무량수전 앞 안양문에 올라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또 산마루,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싶어진다’하는 부분인데, 읽을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한 폭의 산수화가 그려진다.
저자는 우리 전통 미술은 쌓이고 쌓인 조상들의 긴 이야기와도 같은 것이라면서, 언제나 담담하고 별 욕심이 없어서 좋다고 한다. ‘하늘을 향해 두 귀를 사뿐히 들었지만 뽐냄이 없는 의젓한 추녀의 곡선’, ‘외씨버선 볼의 동탁한 매무새’에는 어떤 허세나 가식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없으면 없는 대로의 재료, 있으면 있는 대로의 솜씨가 꾸밈없이 드러난 것, 그다지 슬플 것도 즐거울 것도 없는 덤덤한 매무새를 한국 미술의 마음’이라고 이야기한다.
한국적인 것을 이야기 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이 고려청자다. 저자는 고려청자를 ‘푸르고 맑고 총명한 푸른 빛너울을 쓴 아가씨’라고 묘사하면서 고려청자의 푸른 빛을 들여다보면, 비 갠 후의 담담하고 산뜻하게 드러난 하늘처럼 마음이 조용해진다고 한다.
과거의 것이 아니라 씩씩한 맥박이 뛰고 있는 살아있는 우리 전통문화를 좋은 선생과 감상하며 선생의 눈을 빌려 내 눈을 열고 싶다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완독하길 바란다. 책을 읽는 동안 ‘좋은 선생’인 저자의 눈과 마음을 빌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그렇게 아는 만큼 더 많은 것을 보는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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