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15 격주간 제692호>
나의 사랑 나의 국토 ⑪

연 날리기, 쥐불놀이, 지신밟기 ①
 박태순 / 소설가

해와 달과 지구는 우주 공간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구부터 자전하고 공전하고 있다. ‘해’라는 우리말은 우주공간의 태양(sun)을 일컫는 말이면서 ‘날’을 가리키는 데이(day)라는 뜻과 1년을 가리키는 이어(year)의 뜻을 함께 지니고 있다. ‘달’은 지구의 위성인 문(moon)이라는 뜻과 함께 먼스(month)의 월력을 가리킨다.
일년 열두 달 중 최대명절은 뭐니 뭐니 해도 ‘설 쇠기’가 되는데 새날과 새달과 새해가 새롭게 열리기 때문이다. ‘쇠다’라는 말을 다른 명절에서는 쓰지 않는데 ‘설 쇠기’는 이처럼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함께 축복을 누리는 명절맞이인 것이다. 곧 천지인 합일의 축제 행사들이 다양하게 펼쳐지게 된다. 풍요로웠던 세시풍속과 생활문화를 우리는 잃어가고 있는 중이지만 세인의 사랑과 아낌을 받는 다채로운 제례의 행사와 민속놀이가 없지는 아니하다.
농촌 마을 중에서는 동제와 당제의 부락축제를 벌이는 곳들이 아직 많다. 대체로 동제는 남정네 중심으로 유교적인 제사를 지내는 것을 가리키고, 당제는 부녀자 중심으로 당산제를 올리고 달집태우기 등의 행사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새해 첫날의 설 쇠기는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하고 덕담을 나누는 것이 남성문화 위주로 이루어지지만, 대보름 쪽으로 다가갈수록 어머니와 아이들 중심의 민속 행사와 놀이들이 많아지게 된다는 점이다. 새해의 ‘해’와 대보름의 ‘달’은 그것이 남성과 여성을 서로 달리 상징하는 것이어서 그랬던 것이었을까.

충남 서산시 부석면 창리(倉里)의 영신(靈神) 풍어제(2006년 사진). 어선에 걸어놓는 오방색 붕기(朋旗)들을 추켜들어 거리 행진을 벌이는데 풍어의 소망을 붕기에 담아내기 위해서이다.

정월의 세시풍속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보다는 협동정신과 이타주의의 슬기를 갖게 하는 쪽이었다. 농촌에서는 풍농제가 떠들썩하고 어촌에서는 풍어제가 푸짐한데 사물놀이의 풍물로 마을을 돌며 지신밟기로 풍년을 기약한다. 남성 중심 축제와 여성 중심 축제만 아니라 ‘어린이 중심’ 축제의 설 쇠기는 없었던 것일까? 아니다. 그것도 다양하게 있었다. 설날 세뱃돈 타내기에서 색동옷의 새 옷, 그리고 떡국과 부럼 깨물기, 대보름의 오곡밥과 귀밝이술 훔쳐 마시기에 이르기까지 온갖 설빔과 설음식과 놀이마당이 풍성했다. 설 쇠기의 하드웨어는 어른들 차지였지만 소프트웨어의 알갱이는 어린이들이 실속 있게 누리고 있었던 것.
어린이의 민속놀이들이 또한 알뜰살뜰한 쪽이었다. 윷놀이는 고조선시대의 홍익 세상 이치를 일깨우게 하는 놀음이었고, 널뛰기는 날개를 달고 넓은 세상을 찾아 나서고 싶은 호기심을 자극시키는 것이었다. 스케이트가 없었던 시절의 썰매 타기와 팽이 돌리기, 눈사람 만들기와 눈싸움의 호들갑스러움을 오늘의 국토환경에서는 바이 누려볼 수 없게 돼 있다는 아쉬움이 크다.
연 날리기는 대표적인 겨울철의 놀이인데 지금은 도시화, 산업화로 도대체 연을 날릴만한 공터조차 남아 있지 않다. 개울들은 복개가 돼버리고 방죽이라든가 자갈밭 같은 곳마저 아파트가 들어차버렸다. 그래서 골목대장이라든가 개구쟁이들의 놀이터마저 다 빼앗겨 버렸지만, 초등학교 운동장 같은 곳에서 연을 날리는 아이들마저 죄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물론 이 아이들의 연은 학용품 가게에서 사온 규격품인 경우가 많다. 멋도 맛도 아주 떨어져버렸는데 전통 연 만들기와 민속 연 놀이의 인간문화재 노유상(盧裕相) 할아버지의 집안은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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