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순효는 성종 때 도승지, 강원도 관찰사, 공조판서, 경기도 관찰사, 대사헌, 한성부 판윤, 우찬성 등을 지낸 명신이었다. 성종은 손순효를 총애하여 높은 벼슬을 주어 중요한 일을 맡겼다.
손순효는 남산 밑에 있는 명례방에서 살았는데 청렴하기로 소문이 났다. 집에 아무리 귀한 손님이 찾아와도 값싼 술에 안주는 콩자반, 나물만 내놓았다.
어느 날, 성종은 경회루에서 남산 쪽을 바라보니 숲 속에서 세 사람이 모여 앉아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 혼자 이렇게 생각했다.
‘저 세 사람 가운데 손순효가 끼어 있을 거야.’
성종은 자신의 짐작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내관을 남산으로 보냈다. 한참 뒤 내관이 돌아와 성종에게 아뢰었다.
“손순효 대감이 손님 둘을 접대하고 있었습니다. 술은 막걸리에 안주는 겨우 참외 몇 조각이었습니다.”
성종은 내관에게 다시 명령을 내렸다.
“좋은 술과 안주를 마련하여 손순효 대감에게 보내라. 손 대감에게는 내일 내게 감사 인사를 하면 안 된다고 전해라.”
손순효는 다음 날 아침, 어명을 어기고 성종에게 인사를 했다.
“전하, 어주를 내려 주시어 감사합니다.”
“손 대감, 어명을 어기셨구려. 그 벌로 오늘 저녁에는 나와 한 잔 하십시다.”
성종은 그날 저녁 손순효를 불러 밤 늦도록 술을 마셨다. 손순효는 황송해하며 성종의 술친구가 되어 주었다. 그 뒤에도 성종은 자주 손순효를 불러 술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성종도 술을 좋아했지만 손순효는 지나칠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셨다. 성종은 손순효에게 하루에 석잔 이상의 술을 마시지 말라고 했다.
얼마 뒤, 대궐에서 중국에 보낼 문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성종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성종은 글을 잘 쓰는 손순효에게 맡기려고 그를 불러오게 했다. 그런데 손순효는 술에 잔뜩 취해 꼴이 말이 아니었다. 성종은 손순효를 보고 화가 나서 소리쳤다.
“내가 술을 하루에 석 잔 이상 마시지 말라고 하지 않았소?”
“분명히 석 잔 밖에 안 마셨습니다. 놋쇠 주발로 마셨습니다.”
“하하하, 그래서 그처럼 취했구먼. 글은 다른 사람에게 맡길 테니 그만 돌아가 쉬시오.”
“아닙니다. 글은 제가 직접 쓰겠습니다.”
손순효는 글을 써서 바쳤고 성종이 읽어 보니 명문이었다.
성종은 크게 기뻐하며 함께 술을 마셨고 손순효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취해 버렸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자고 성종이 팔을 붙잡았지만, 그는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어 버렸다. 이 때 성종은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손순효를 덮어 주었다.
성종의 사랑을 많이 받은 손순효는 성종이 세상을 떠나자 밤낮없이 통곡하며 한 달이나 음식을 들지 않았다고 한다.
〈신현배 / 시인, 아동문학가〉
♠“조선 시대에 명나라 사신과 술 대결을 펼친 관리가 있었다면서요?”
선조 때 벼슬길에 나섰던 이경함은 술고래라고 소문난 관리였다. 앉은 자리에서 말술을 마셔도 조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명나라에서 주난우라는 사신이 왔다. 이 사신은 명나라에서 첫손에 꼽히는 술꾼으로, 그와 술을 마셔 당할 사람이 없었다. 조정에서는 이 사실을 알고 그를 대접할 사람으로 이경함을 뽑았다.
주난우와 이경함은 마주앉자마자 정신없이 술을 마셨다. 잔은 보통 술잔보다 서너 배는 컸다. 두 사람은 그 잔을 주고받으며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 그런데 먼저 취해 곯아떨어진 것은 주난우였다. 이경함은 멀쩡하게 일어나 선조에게 가서 결과를 보고했다.
“그대는 얼마나 더 마실 수 있는가?” 선조가 묻자 이경함이 대답했다. “큰 잔으로 석 잔 정도는 더 마실 수 있습니다.”
선조는 커다란 은잔을 가져오게 해 이경함에게 술 석 잔을 주었다. 이경함은 그 술을 다 받아 마시고도 비틀거리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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