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박태순 / 소설가
새해 첫날 해맞이 명소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동해안 일대 중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은 물론 울릉도와 독도 쪽이지만 교통 환경 때문에 포항·울산의 여러 포구라든가 강릉시의 정동진 등이 저마다 ‘해돋이 1번지’임을 주창하고 나선다.
기상청의 발표에 의하면 2009년 1월 1일 육지 중에서 가장 빠르게 해가 뜨는 곳은 울산시 울진군 서생면 대송리의 간절곶이다. 오전 7시 31분 30초에 일출의 장관을 볼 수 있다. 그리고 1초 뒤에는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의 대왕암 공원에서 해가 뜬다. 포항시 남구 대보면의 호미곶에는 ‘해맞이 광장’이 조성되어 있는데 지리적으로는 육지 중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곳이 된다. 하지만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 있기 때문에 간절곶의 일출보다 늦어 호미곶에서는 7시32분이 되어서야 해가 뜨게 된다.
동해안만 아니라 남해안과 서해안에서도 해돋이 행사를 갖는 곳들이 있다. 여수시 돌산읍 금오산에 있는 향일암에서는 매년 ‘일출제’라는 새해맞이 축제를 가져오고 있다. 충남 당진군 석문면 교로리의 왜목마을은 해양수산부가 ‘서해안 해돋이 명소’로 선정하기도 했던 곳이다. 그런가하면 부산시와 인천시 등 항구도시들은 ‘호화 유람선 송구영신 축제’를 벌인다. 12월 31일 황혼 무렵의 ‘해넘이’, 그리고 1월 1일의 ‘해돋이’를 해상에서 누린다. 묵은해와 새해를 겹치기로 가져보는 것이 썩 좋은 추억 만들기의 경험이 된다고 한다.
바다만 아니라 고산준령의 해맞이 행사도 각광을 받는다.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은 물론 소백산 비로봉(1440m)에서도 매년 1월 1일 ‘해돋이 등산대회’를 펼치고 있다. 오대산이라든가 무등산, 월출산 같은 곳에서도 산악인들의 신년 축하 산행은 인기 있는 메뉴이다. 나 혼자만 아니라 연인이라든가 가족이 함께 하는 해맞이 행사가 권장되고도 있다.
그러하지만 경관이 수려한 명산대천과 해양을 찾는 것만 능사가 아닐 수도 있다. 내 마을, 내 동네의 앞산과 뒷산, 또는 강과 호수에서 새해맞이를 해보는 체험이 또한 소중하다. 국토의 명소는 무슨 별천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과 공간과 시간이라는 ‘3간’의 미팅(meeting), 이중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다. 국토 시간(일출)과 국토 공간(명소)의 미팅 이벤트가 요란스러워야 할 까닭은 없지 않은가. 나와 우리가 결정하기에 달렸다.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박두진 - [해] : 발췌 인용)
“어둡고 괴로워라 밤이 길더니 삼천리 이 강산에 먼동이 텄네….” 하는 노래는 8.15 해방 시대에 애창되었던 곡이었다. 내 삶에 드리워져 있는 어둠을 살라먹고 내 삶에 새로운 해의 광명을 영접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해맞이 명소가 될 수 있다.
서울시민이라면 북한산에 올라 새해 설계를 다짐해봄이 어떠할까. 거대도시의 한복판에 이러한 명산이 있다니, 새해에 이미 복 많이 받고 있는 사람들이 서울 시민임을 일깨우게 될 터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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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쪽에서 바라본 북한산의 해돋이 모습(황헌만 사진). “오늘에는 오늘의 태양이 뜨고 내일에는 내일의 태양이 뜬다(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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