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01 격주간 제691호>
<별난 한국사 이야기> 설날 저녁 서울을 뒤덮은 머리카락 태우는 냄새

숙종 때 제주 중문면에 원형방과 이좌수가 살았다. 원형방은 대포리, 이좌수는 중문리에 집이 있었는데, 두 사람은 서로의 집을 오가며 매우 친하게 지냈다.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은 원형방이었다. 이좌수는 말의 방울 소리를 울리며 늘 자기 집을 찾던 원형방을 볼 수 없게 돼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이좌수가 잠자리에 들었는데 밖에서 말의 방울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이좌수는 깜짝 놀랐다.
‘아니, 이 소리는 원형방의 말 방울소리잖아. 원형방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데 이게 어찌 된 일이지?’ 그 때 밖에서 누군가 이좌수를 불렀다.
“이좌수, 자는가? 날세, 나야. 문 좀 열어 주게.”
“자네는 원형방 아닌가? 저승길로 떠난 사람이 여기까지 웬일인가?” “응, 오늘이 내 제삿날이어서 찾아왔네. 하도 괘씸한 일을 당해서 그냥 돌아가는 길이라네.”
원형방은 이좌수와 마주앉자 흥분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오랜만에 집에 와서 보니 상을 차려 놓았는데, 멧밥에 구렁이를 넣어 뒀지 뭔가. 어찌나 화가 나던지 아이를 솥에 빠뜨리고 집에서 뛰쳐나왔네.” 원형방은 갈 길이 바쁘다며 서둘러 길을 떠났다.
다음 날 이좌수가 원형방의 집에 가 보니 난리가 일어나 있었다. 간밤에 며느리가 아이를 안은 채 솥에서 국을 뜨는데, 아이가 솥에 빠져 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사도 못 드리고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이좌수는 원형방의 말이 생각나서 상에 올렸던 멧밥을 가져오라 해서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멧밥에 머리카락 한 올이 들어 있었다. 원형방의 눈에는 머리카락이 구렁이로 보였던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 머리카락이 음식에 들어 있으면 불쾌하게 여기고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사람들은 머리카락에 대해 남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함부로 버리면 새가 물어 가고, 그러면 두통이 생긴다고 믿었다. 새가 주둥이로 머리를 쪼는 것처럼 아프다는 것이다.
또한 남이 버린 머리카락을 밟으면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그 머리카락을 태우면 머리카락의 주인이 미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가져다가 저주를 퍼부으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고 믿었다.
머리카락을 함부로 버리면 이처럼 좋지 않은 일이 많이 생기기에, 옛날 사람들은 방 밖에서 머리를 빗지 못하게 했다. 머리를 빗다가 빠진 머리카락은 한 올도 버리지 않고 일 년 동안 알뜰히 모아 놓았다가 설 날 저녁에 한꺼번에 태우도록 했다.
19세기 말에 조선을 찾았던 영국의 여성 여행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자신의 여행기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에서 “명절인 설날 저녁 서울은 머리카락 태우는 냄새로 뒤덮였다. 그 냄새는 얼마나 지독한지 솔잎 태우는 냄새보다 독했다. 민가를 둘러보니 보이는 것은 문전에서 머리카락을 태울 때 나는 불꽃뿐이었다.”고 기록했다. 그렇게 머리카락을 한꺼번에 태워야 나쁜 병을 물리치고 귀신이 감히 접근하지 못해, 일 년 동안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신현배 / 시인, 아동문학가〉

♠“머리카락이 자꾸 빠져 대머리가 되면   옛날에는 어떻게 했나요?”

서양이나 우리나라나 머리카락을 소중히 여기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모에게 받은 것은 훼손하지 않는다고 하여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다. 서양에서는 머리를 힘과 재능과 사랑의 원천이라고 믿어, 뉴턴은 머리카락이 자꾸 빠지자 자기 재능이 줄어든다고 안타깝게 여겼다.
소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사람들은 정력이 머리에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정력을 많이 쓰면 머리카락이 자꾸 빠져 대머리가 된다고 생각했다. 대머리가 되면 약을 찾게 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머리가 대머리에 좋다고 믿었다. 그래서 거머리를 말려 가루를 만든 뒤 머리에 발랐다. 대머리 약은 수없이 많지만, 아직까지 특효약은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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