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홍길동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홍길동은 조선 제15대 왕 광해군 때 좌참찬을 지낸 허균이 지은 소설 ‘홍길동전’의 주인공이다.
백성의 재물은 손도 안대
홍 판서와 노비 춘섬 사이에서 태어나, 첩의 자식이라고 늘 천대를 받으며 자라난 그는 집을 뛰쳐나가 ‘활빈당’을 조직한다. 그리고는 각 지방의 탐관오리들과 부자들의 불의한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
그러면서도 홍길동은 백성들의 재물은 손도 대지 않았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의적 활동을 벌인다. 그는 조정의 회유로 병조판서까지 되었다가 남경을 향해 떠나는데, 도중에 율도국을 발견하여 이상 사회를 건설한다는 것이 이 소설의 대강 줄거리다.
사람들은 홍길동을 소설 속의 주인공으로만 알고 있지만, 조선 시대에 홍길동이 진짜로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6년(1500년) 10월 22일의 기록을 보면 홍길동에 대한 기사가 나온다.
영의정 한치형, 좌의정 성준, 우의정 이극균이 아뢰기를, “강도 홍길동을 체포하였으니 기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백성들을 위해 해를 제거하기로 이보다 큰일이 없으니, 청하건대 그 일당을 모조리 잡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이 기사를 보면 홍길동은 도둑의 무리를 거느린 강도, 즉 강력한 도둑의 우두머리임을 알 수 있다.
첨지라 스스로 칭해
그는 대낮에 떼를 지어 다니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했는데, 조정에서는 그를 잡지 못해 꽤나 속을 썩였나 보다.
다른 기록을 보면 “강도 홍길동은 옥관자를 붙이고 붉은 허리띠 차림으로 정3품 무관직인 첨지라 스스로 칭하며, 대낮에 떼를 지어 무기를 들고 관부에 드나들면서 거리낌 없이 행동했습니다. 그런데 지방 말단 관리들은 이를 알면서도 체포, 고발하지 않았으니 이들을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는 기사가 나온다.
홍길동은 당상관 복장으로 높은 벼슬아치 행세를 하며 지방 말단 관리들을 농락했던 것이다. 홍길동은 충청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공주 유금면 대동리의 무성산에는 그가 쌓았다는 산성이 남아 있단다.
또한 ‘증보 해동이적’이라는 책에는 “홍길동이 감옥에서 탈출하여 해외로 달아나 임금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지금의 오키나와인 유구국에 홍길동이 갔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유구국 다스렸을 수도
실제로 유구국의 역사서인 ‘유양지’에는 “1500년쯤에 다른 민족이 들어와 유구국을 100년 동안 다스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다른 민족의 무리가 바로 홍길동의 무리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어쨌든 허균은 홍길동이라는 인물을 모델로 하여 ‘홍길동전’을 쓴 것이 분명하다. 허균이 41세 때 공주목사로 부임했는데, 공주는 홍길동에 대한 전설이 많은 곳이다.
〈신현배 / 시인, 아동문학가〉
♠“홍길동을 본받아 한말에 활빈당이 만들어졌다면서요?”
동학혁명에 가담했던 농민들은 1899년 이후 여러 가지 이름의 집단을 만들어 치열한 투쟁을 벌였다. 그 가운데 하나가 홍길동을 정신적인 지주로 삼았던 ‘활빈당’이다. 이들은 홍길동의 활빈당과 마찬가지로 탐관오리들과 부자들의 불의한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농민이나 상인들의 재물은 절대로 빼앗지 않았다.
활빈당은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700~800명으로 구성되었다. 남부 지방에서 1900년부터 1904년까지 활발한 활동을 벌였으며, 1905년 이후에는 의병에 흡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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