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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1 격주간 제68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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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H인의 필독서> 이문구의 ‘관촌수필’ |
고향의 변치 않아야 할 소중한 가치 발견
2008년의 끝자락을 잡고 이문구의 ‘관촌수필’을 펼쳐들었다. 제목 탓에 수필집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지만, 수필과는 거리가 먼 연작소설집이다.
‘관촌수필’은 해방을 지나 6·25를 겪고, 또 본격적인 근대화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온갖 혼란을 겪어온 민초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1972년 5월에 발표한 ‘일락서산’을 시작으로 해서 5년 동안 발표한 ‘화무십일’, ‘행운유수’, ‘녹수청산’, ‘공산토월’ 등 8편의 중단편소설을 한데 묶어, 1977년에 발행되었다.
한학의 박식한 어휘와 국어사전에도 없는 낯설고 상스러운 토속어의 모순에 찬 공존은 ‘관촌수필’이 갖는 최대 특징이자 단점이다. 수시로 등장하는 진한 충청도 사투리는 책 읽는 속도를 늦추게 하지만, 그 낯설음은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출간 이후 30여년의 세월을 건너온 ‘관촌수필’에 실린 첫 번째 작품 ‘일락서산’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 삶에 있어 절실하고, 절절한 것은 대부분 환상처럼 보인다는 어느 평론가의 말이 떠오른다. 고향이 환상처럼 보이는 이유 역시, 절실하고 절절한 것이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일락서산’은 주인공인 ‘나’가 양력 정초에 성묘를 목적으로 고향을 찾는 것으로 시작한다. 귀성열차를 끊어놓은 그는 “숭헌… 뉘라 양력슬두 슬이라 이른다더냐, 상것들이나 왜놈 세력(歲曆)을 아는 벱여”라고 꾸중하던 할아버지 말씀이 되살아나 마음 한 켠이 결리기도 한다. 고색창연한 이조인이었던 할아버지, ‘나’는 오직 그 분 한 분만이 진실로 육친이요, 조상의 얼이라고 생각한다. 13년 만에 고향을 찾은 그의 가슴을 후려친 것은 ‘왕소나무’가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이제 고향은 옛 모습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완전히 타락한 동네’가 된 것이다. 그리고 옛집의 추레한 모습에 한결 더 가슴이 미어지는 비감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 만난 사람들, 고향을 떠나와서 만난 고향사람들의 이야기를,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농촌 사회의 소외와 해체과정과 잇대어서, 자신만의 토속적인 문체로 묘사해 내고 있다. ‘관촌수필’ 여섯 번 째 연작인 ‘관산추정’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세월은 지난 것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새로 이룬 것을 보여줄 뿐이다. 나는 날로 새로워진 것을 볼 때마다 내가 그만큼 낡아졌음을 터득하고 때로는 서글퍼하기도 했으나 무엇이 얼마만큼 변했는가는 크게 여기지 않는다. 무엇이 왜 안 변했는가를 알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겠기 때문이다.”
작가는 과거와 현재로 공존하는 두 개의 고향 앞에 서 있지만 변화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급속한 변화 속에서도 변치 않거나 변치 않아야 할 것들, 그래서 더욱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두고두고 가슴 저미는, 진정을 담아낸 작품인 ‘관촌수필’을 읽으며 올해를 갈무리해보는 것도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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