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조식의 지리산
박태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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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노고단에 오른 문인들(1989년 10월 사진). 왼쪽으로부터 조정래, 고은, 박태순, 임헌영.> |
지리산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 변하는 풍경들이 모두 섬세하고 예민하다. 산토끼처럼 눈, 코, 귀, 입을 모두 열어놓아야 하리라. 물론 때로는 반달곰처럼 산허리를 돌고 능선들을 오르락내리락 해보아야 한다. 지리산의 웅장함, 거대함, 심오함, 유장함을 한껏 누려볼 수 있기 위해서는.
늦가을의 지리산은 특히 활화산이다. 산천초목이 한꺼번에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만산홍엽의 대자연 속에서 너도 나도 붉은 마음과 뜨거운 가슴을 열지 않을 수 없다. 이 산의 품안에 들면 내가 참으로 꾀죄죄하기만 하다는 것을 들통 나버리게 되는 것이다.
지리산(智異山)을 나는 지리산(地理山)이라고 자칫 한자어 표기에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야말로 국토의 지리학을 왈칵 모아놓은 산이라 느끼기 때문이다. 지리산을 다른 이름으로는 두류산(頭流山)이라고 하는데, 백두산이 흘러내려와 솟구친 산이라 살핀 것이다. 그러니 누구나 지리산에서 백두산을 느껴야 한다. 개마고원, 철령,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속리산, 덕유산으로 뻗어 내려오는 백두대간의 대완성….
“두류산 양단수(兩湍水)를 예전에 듣고 이제 보니
도화(桃花) 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어라
아이야 무릉(武陵)이 어디냐, 난 여긴가 하노라”
〈현재 맞춤법 표기〉
남명 조식(1501∼1572)이 읊은 시조인데, 남명은 그의 나이 60세 되던 1561년에 아예 가솔들을 이끌고 지리산에 들어온다. 오늘의 행정지명으로는 산청군 시천면 사리의 덕천강변에 산천재(山天齋)라는 재실을 짓는다.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1915m)이 바로 눈앞으로 들어오고 제석봉·연하봉·촛대봉·영신봉 등의 연봉들과도 이마받이를 할 수 있는 명당자리이다. 뿐인가, 덕천강은 이 재실의 바로 위쪽에서 ‘양단수’를 이루고 있다. 대원사와 내원사 쪽에서 흘러오는 물줄기와 중산리 쪽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서로 만나는 합수머리 지경이 된다. ‘두류산 양단수’에 자리 잡은 산천재에서 남명은 지리산 지킴이이자 터줏대감의 몫을 톡톡히 하였다. 산천재의 편액에는 ‘천명유불명(天鳴猶不鳴)’이라는 시구가 보이는데 하늘은 이미 울렸을지라도 지리산 천왕봉은 아직 울리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지리산 천왕봉의 체통이 얼마나 묵중하더냐 하는 찬탄이었다. ‘산천재’라는 재실의 명칭이 우연스런 것이 아니었다. 남명은 의(義)와 경(敬)을 실천하려는 꼿꼿한 선비 정신을 천왕봉의 ‘산’과 두류산의 ‘하늘’에서 일깨우고 있었던 것.
남명의 시조는 이어서 복사꽃(도화)이 뜬 맑은 물에 천왕봉의 산그림자(산영)가 또한 잠겼음을 보게 된다고 읊는다. 도화와 산영의 화합이 참으로 절묘하다. 화개수류(花開水流)의 덕천강은 지리산 산악정신의 ‘의’와 ‘경’을 바깥세상으로 실어 날라 퍼뜨리게 하는 것일 터.
남명 조식의 지리산은 무엇이었던가. 올바르게 사는 삶, 공경하며 사는 삶의 굳은 뜻을 간직하고 있었다. 오늘날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이 과연 이 뜻을 제대로 아로새기게 될까. 지리산의 환경오염과 생태파괴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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