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의 기로에 서서
“나이가 드니까 어떤 것이 선이고 악인지 너무 혼란스러워.” 매디스가 본드에게 던진 말이다. 자신을 배신했던, 하지만 사랑했던 여인 베스퍼를 잃은 혼란에 빠진 본드는 통제 불능 상태다. 어딜 가든 자신을 막는 사람은 시체로 만든다.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 것일까?
22번째 시리즈 ‘007’은 21번째까지 분명했던 선과 악의 명제를 혼란스럽게 하면서 진행된다. 분명한 선악이 대립했던 냉전시대에 시작해서 수많은 악당을 만들었던 영화 ‘007’은 이제 선악을 구별하기 어렵다는 듯 ‘제임스 본드’의 내면으로 들어가 보려한다. 기억을 잃어버리고 “나는 누구인가?”를 외치는 ‘본 아이덴티’처럼 변해버렸다. ‘다크 나이트’의 ‘배트맨’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면서 흥행타를 날리더니 제임스 본드 역시 어둡고 고민이 많아졌다.
자신을 배신했던 사랑하는 여인 베스퍼를 배후 조종한 미스터 화이트를 잡아오는 본드(다니엘 크레이그). 하지만 M과 함께 심문하는 과정에서 “우리 조직은 어디에나 있다”는 말과 함께 믿었던 내부 요원의 총격으로 화이트가 죽고 만다. M16내부에 까지 스파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M과 본드는 경악한다. 연인을 잃은 분노와 ‘퀀텀’의 위력에 분노하는 본드는 앞뒤 가리지 않고 배후를 파헤친다. 그러던 중 구테타로 불안한 남미의 독재자들을 강대국들과 연결시켜주는 ‘그린’을 발견한다. ‘그린’은 독재자들에게는 정권을, 강대국들에게는 천연자원을 넘겨주며 자신은 남미의 물 자원을 확보하려고 한다. 미래의 자원 ‘물’을 확보하려는 그린을 막아서는 본드. 하지만 이미 강대국 정부들이 ‘그린’에게 넘어간 상황이라 점점 더 위기에 빠져든다.
22번째 시리즈인 ‘퀀텀 오브 솔러스’는 21번째 시리즈인 ‘카지노 로얄’의 시간 뒤라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일단 ‘카지노 로얄’에서 사랑했던 연인 베스퍼와 ‘퀀텀’이라는 보이지 않는 조직에 대한 설정과 감정이 그대로 연결된다. 대사 곳곳에서 ‘카지노 로얄’의 이야기들이 설명 없이 등장하기 때문에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다른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강력한 액션장면으로 시작한다. 한번도 보지 못했던 강력한 액션이 바로 새로운 ‘007’의 매력이다. 또 하나의 매력은 선과 악의 불확실한 경계다. 연인을 잃은 분노가 가득한 007은 거침없이 살인을 하는 살인 기계처럼 묘사된다. 고독하고 외로운 살인자의 이미지로 변신한 본드는 조직의 임무보다 개인적인 복수에 더욱 집착한다. 영국 여왕에 대한 충성심으로 시작되었던 제임스 본드의 모습은 이제 자신의 복수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분노하는 모습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손광수 / 시나리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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