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만화 같은 성장 SF
작년에 봤던 영화와 올해 본 영화가 잘 구분되지 않을 만큼 비슷한 영화들로 영화계가 홍수를 이룬다. 스파이더맨, 엑스맨, 아이언맨, 슈퍼맨 등 몇 년 동안 끊임없이 출동했던 ‘맨’들이다. 그들을 한번에 등장시킨 듯한 ‘히어로즈’라는 미국 드라마까지 있다. ‘영웅’과 ‘초능력자’가 현실세계에 존재할 듯싶다. ‘초능력자’는 지구를 구해야할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탄생한다. 꼭 그때쯤에는 악당도 발맞춰서 태어나 지구를 위협한다. 이것이 일반적인 초능력 이야기다.
하지만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색다르다. 지구를 구하려 하지도 않고, 악당과도 싸우지 않는다. 그저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감정들을 바꾸기 위해서 가공할 초능력을 쓴다.
지각이 일상인 명랑 여고생 마코토. 가족, 친구들과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있는 힘껏 달리면 시간을 과거로 돌리는 ‘타임리프’ 능력을 갖게 된다. 처음에 당황하지만 곧 이 능력을 사용하는데 재미를 느낀다. 지각하는 시간을 되돌리고, 어제 본 쪽지 시험을 다시 보고, 노래방에서 시간을 연장해서 목이 쉴 때까지 노래를 하고, 온갖 사소한 일에 초능력을 쓰기 시작한다. 문제는 단짝인 남자친구 마미야의 “사귀어 볼래?”라는 고백을 듣고부터 시작된다. 사랑 고백에 당황한 마코토는 시간을 돌려버려서 없던 일로 만들어버린다. 마미야의 사랑을 마코토만이 알고 있기 때문에 마미야를 볼 때마다 어쩐지 어색하다. 그런데 항상 옆에서 수다를 떨던 단짝 친구가 오히려 마미야에게 고백을 해버린다. 아쉬움, 질투와 안타까움, 알 수 없는 감정에 혼란스러울 때 또 한명의 친구 코스케도 후배 여학생에게 사랑고백을 받는다. 오히려 그 사랑을 연결시키기 위해 과거로 왔다갔다 바쁜 마코토. 하지만 자신에게 고백했던 마미야를 마음에서 떨칠 수가 없다.
지구와 악당에서 벗어난 신선한 초능력자 이야기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40년 전 일본에서 출판한 소설이다. 이 오래된 놀라운 소설에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명랑하고 현대적인 10대의 캐릭터를 접목시키며 새로운 초능력 영화로 탄생 시킨다. 악당도 지구를 구할 임무도 없는 10대 소녀가 자신의 사랑을 찾아가는 성장통에 관한 영화다. 실수와 후회와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가장 많은 사춘기의 감성을 다룬다. 미래의 불확실함과 사랑 고백에 혼란스러운 이 시기를 ‘타임리프’라는 능력으로 새롭게 바라본다. 가을 햇살처럼 따뜻하고 안타깝게 초능력이 사용된다.
과격하고 폭력적인 영웅들 이야기에 지쳤다면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권해본다. 초능력으로 자신의 사춘기 감성과 싸워가는 새로운 SF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 〈손광수 / 시나리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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