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01 격주간 제687호>
<4-H인의 필독서>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

지난 세월 통해 자신의 삶 투영해볼 수 있는 작품

‘엄마의 말뚝’은 세 편의 연작소설이지만 한편 한편이 독립된 단편으로 어떤 작품을 먼저 읽느냐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엄마의 말뚝1’은 1980년에, 그리고 ‘엄마의 말뚝2’는 1981년에 ‘문학사상’에 연재되었고, 마지막 3편은 1991년에 발표되었으며, ‘엄마의 말뚝2’로 제5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연작의 첫 번째 작품인 ‘엄마의 말뚝1’의 줄거리는 이렇다. 양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다면 간단한 수술로 고칠 수 있는 맹장 정도의 병으로 아버지가 죽자 엄마는 오빠를 데리고 서울로 간다. 그 후 나를 데려가려고, 박적골에 온 엄마는 서울에 가서 공부를 많이 해 신여성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막상 엄마를 따라간 곳은 사대문 밖 현저동 산꼭대기 단칸 셋방이었다. 문 밖에 살면서 문 안을 연연하던 엄마는 억지를 부려가며 문 안에 있는 매동학교에 나를 입학시킨다. 그리고 현저동 꼭대기에 있는 괴불마당집을 장만하게 된다. 이사 간 날, 첫날 밤 세 식구가 나란히 누운 자리에서 엄마는 감개무량한 듯 말한다.
“기어코 서울에도 말뚝을 박았구나. 비록 문 밖이긴 하지만….”
회한이 뒤섞인 이 말 속에는 고향을 등지고 서울에 올라와 고생하며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있다.
어머니는 늙어갈수록 현저동 괴불마당집을 잊지 못했고 “그때에다 대면 지금 큰 부자 됐지?”라면서 무엇이든 그 시절하고 대보곤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때하고 비교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 한 아직도 그 말뚝에 매인 거라고 생각한다.
우린 그 최초의 말뚝에 매인 셈이었다. 놓여났다면 구태여 대볼 리가 없었다. 어느 만큼 달라졌나 대본다는 건 한끝을 말뚝에 걸고 새끼줄을 풀다가 문득 그 길이를 재보는 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괴불마당집이 있던 자리에 연립주택이 세워지는 걸 보게 된다. 엄마의 말뚝이 뽑힌 것이다. 이렇게 엄마의 말뚝은 뽑혔지만, 나의 의식 속의 말뚝은 아직도 건재했다. 어머니가 세운 신여성의 기준이 되었던 ‘너무 뒤떨어진 외양과 터무니없이 높은 이상과의 갈등, 영원한 문밖의식’ 이런 것들이 나의 말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멀리 벗어난 것 같아도 말뚝이 풀어준 새끼줄 길이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는 내가 아직도 잊지 않고 있는 ‘신여성’이란 말을 마치 복원한 성벽처럼 옛것도 아닌 것이, 새것도 못되는 우스꽝스럽고도 무의미한 억지라고 느꼈다. 나는 앞으로 다시는 그것을 복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지나간 세월 역시 부정되어선 안 될 것 같았다.”
탄탄한 문장과 빛나는 비유로 읽는 재미를 만끽하게 하는 ‘엄마의 말뚝’이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까닭은 그 지나간 세월을 통해서 지금을 사는 나 자신의 삶을 투영해 볼 근거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진아 / 방송작가〉

목록
 

간단의견
이전기사   <농촌·사회단신> 껍질째 먹는 미니 참다래 신품종 개발
다음기사   4-H과제학습활동 풍성한 수확 거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