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삼거리 흥타령축제
박태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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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삼거리의 옛 모습(1976년 황헌만 사진). 도로경관은 크게 바뀌어 흥청거리던 장터의 풍류는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되었지만 흥타령축제는 창조적으로 계승된다.> |
전통시대에는 음력 10월을 ‘상(上)달’이라 불렀다. 일년 열두 달 중 가장 으뜸가는 달이라는 것인데 추수동장(秋收冬藏)의 절기였다. 가을걷이를 끝내고 겨울갈무리를 해야 한다. 논틀밭틀 갈아엎어 노적가리 쌓고, 초가이엉 새로 입히고 땔감 마련이라든가 김장 담그기 등으로 분주하던 환절기였다.
무엇보다도 나라나 고을 행사로서는 ‘하늘축제(天祭)’가 중요하였다. ‘하늘 자손’이라 믿었던 고대 천손족(天孫族)은 신시(神市)를 차려 천지신명과 일월성신에게 감사를 드리는 국풍대회를 펼쳤다. 무천(舞天), 영고(迎鼓), 동맹(東盟 또는 同盟)이라 했다. 천손족은 워낙 가무음곡을 즐겼기에 서양의 추수감사제에 못지않은 ‘신명세상’의 축제 전통을 ‘10월 상달’에 누려오고 있었다.
지금은 음력 10월 아니라 양력 10월이 몹시 분주하다. 전국전토의 시군 지자체들이 각자 제 나름의 축제행사를 마련하느라 떠들썩하다. 어느 일면 요란스럽기도 하다. 축제 메뉴들이 참으로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산업기술문명을 한껏 누리려는 새로운 형태와 방식의 행사들도 있지만, 농경문화 전통 계승에 따르는 민속축제 계열이라든가 한바탕 마당극 놀이 유형도 구태의연 아니라 신식 풍류를 즐기려 한다. ‘천안삼거리 흥타령 축제’는 교통도시의 지역적 특성을 살리면서 민요타령의 신명을 합류시키려는 카니발이다.
중국 북경은 자금성의 정문을 천안문이라 부르거니와 충남 천안시는 그런 문은 갖지 않는 대신 ‘삼거리’를 건사해오고 있는 것이다. 정치 행정의 심장부를 이룬 적은 없지만 교통의 중심지이면서 물산의 집결지가 되어왔다.
충청-경상-전라도를 합쳐 ‘하삼도(下三道)’라 하거니와 천안삼거리가 이러한 3도의 센터를 이루어오고 있었다. 삼남대로, 영남대로, 서울길이 영어글자 ‘Y’를 뒤집어놓은 형태로 모여드는 한복판 가랑이가 바로 ‘흥타령’의 장마당이었다.
“천안삼거리 흥, 능수버들은 흥, 제멋에 겨워서 흥, 휘늘어졌구나 흥, 에루화 좋구나 흥, 성화가 났구나 흥.”
천안삼거리 능수버들은 어찌하여 휘늘어져 있었던가. ‘제 멋에 겨워서’ 늘어진 것이라 했으니 ‘제 멋’을 제대로 살려야 한다. 오늘의 천안시에 전통시대의 삼거리는 제대로 보존되고 있지 않은데, 달라진 교통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대신 10만5000㎡(3만2000여평)넓이로 ‘삼거리 기념공원’을 조성하여 ‘아라리오 광장’을 세워놓고 있다.
국토의 명장소였던 삼거리 장터는 역사 속으로 매몰되었지만 ‘흥타령’ 민요만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여전히 천안시의 랜드마크를 이룬다. ‘천안삼거리 문화제’가 기왕에 있었던 것이지만 이를 리모델링하여 명칭을 ‘흥타령 축제’로 바꾼 것이다.
콘텐츠도 새로 구성하여 거리축제를 무용축제로 전환시킨 것. ‘신명·감동·열정’이란 브랜드를 내세워 춤·노래·의상 등의 각 부문에서 콘테스트를 펼친다. ‘춤추는 천안, 신명나는 대한민국’이라는 표어를 내세우고 있다.
대단한 불경기에 경제위기 소리도 들리지만, 흥타령의 춤으로 대한민국을 신명나게 하는 일이 어찌 필요하지 않을까. 천안문화원장을 역임해온 노령의 민병달 선생은 성공적인 지역축제라는 성과를 얻고 있다고 귀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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