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15 격주간 제686호>
<별난 한국사 이야기> 한반도 지역을 휩쓴 공포의 메뚜기 떼

노벨 문학상을 받은 펄 벅의 소설 ‘대지’에 보면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메뚜기들이 하늘로 펼쳐져 올라가며 땅을 뒤덮었다. 그러자 왕룽이 그의 일꾼들을 불렀다. … 하늘이 캄캄해지면서 공중에는 서로 부딪치는 수많은 날개들이 단조롭고 시끄럽게 울리는 소음으로 가득했다.
이 밭은 말짱하게 남겨 두고 그냥 날아가다가도 저 밭에는 마구 몰려들어 겨울처럼 황량하게 만들며 모두 먹어 치우다 떨어져 죽었다.
사람들이 한숨을 짓고 ‘하늘의 뜻이 그러하니까’라고 말했지만, 왕룽은 격노해서 메뚜기들을 후려치고 짓밟았으며, 그의 일꾼들이 도리깨를 휘둘러 때리니까 메뚜기들은 붙여 놓은 불길 속으로 떨어지거나 사람들이 파 놓은 수로의 물 위로 떨어져 둥둥 떠내려갔다. 수백만 마리의 메뚜기가 죽었지만 그 숫자는 남은 메뚜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메뚜기의 공포에 사로잡혀

‘대지’는 중국을 무대로 펼쳐지는 소설이다. 이 소설에 잘 나타나 있듯이 중국 사람들은 메뚜기 떼가 날아오면 공포에 사로잡혔다.
메뚜기들은 들에 심어 놓은 곡식들을 모조리 먹어 치워 한 해 농사를 완전히 망쳐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메뚜기들에 의한 피해는 중국뿐만이 아니라 한반도 지역에서도 오랜 옛날부터 있어 왔다.
‘삼국사기-신라 본기’에는 남해 차차웅 15년(서기 18년)에 메뚜기 때문에 피해를 입어, 굶주리는 백성들을 위해 창고를 열어 식량을 내주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것이 한반도 지역의 메뚜기 피해에 대한 첫 기록이고, ‘삼국사기’에 신라 14번, 고구려 8번, 백제 5번의 기록이 나온다.
백제 초고왕 43년(서기 208년)에는 “메뚜기가 일어나고 심한 가뭄이 들어 곡식이 별로 익지 않았다”고 했고, 초고왕 46년(서기 211년)에는 “남쪽 지방에서는 메뚜기 때문에 피해를 입어 백성들이 굶주림에 시달렸다”고 했다.

지신이 노해 내린 재앙 인식

이러한 기록은 ‘고려사’나 ‘조선왕조실록’에도 여러 차례 나오는데, 한반도 지역에도 메뚜기들에 의한 피해가 적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메뚜기 떼가 기승을 부리면, 백성들은 임금이 나라를 잘못 다스리거나 지신이 노하여 이런 재앙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메뚜기 떼를 물러가게 해달라고 제사를 지냈다. 
 〈신현배 /  시인, 아동문학가〉

 
♠“‘삼국사기’의 메뚜기 피해 기록으로 보아 고구려, 백제, 신라는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 대륙에 있었다고요?”

떼로 몰려다니며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메뚜기는 전 세계에 7종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주로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서남아시아, 중국 등지에 있는데, 이 메뚜기는 ‘이주형’ 메뚜기이다. 그런데 한반도 지역에 있는 메뚜기는 한 군데 정착해 사는 ‘단서형’ 메뚜기이다.
사학자 정용석 선생은 ‘삼국사기’의 메뚜기 피해 기록으로 보아 이 메뚜기는 중국에 있는 이주형 메뚜기이고, 따라서 고구려, 백제, 신라는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 대륙에 있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메뚜기 피해 기록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리나라에서 메뚜기 피해는 1930년까지 그 기록이 나오고, 그 이후부터는 기록이 없다.
한반도 지역을 휩쓴 메뚜기는 펄 벅의 소설 ‘대지’의 이주형 메뚜기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 대신 단서형 메뚜기라 해도 그 수가 엄청나게 늘어나 농작물에 피해를 주었다고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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