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랑포(高浪浦)와 분단 유목민
박태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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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고루 성채 쪽에서 조망하는 임진강 고랑포 일대의 풍경. 아직은 민간인 접근이 원활하지 않다.> |
임진강 분단기행 아니라 임진강 통일기행을 기획해보고 싶다. 국토는 잠정적으로 분단되어 있을지라도 역사는 분단되는 것일 수 없으니 ‘역사통일기행’은 우리 시대에 요청되는 문화작업이다.
한탄강과 임진강의 고고인류학, 민족문화사는 장구하고 사연도 깊다. 철원군 전곡리에서는 구석기시대 선사유적지가 발굴되고 연천군과 파주시 일대에는 고구려 산성들이 도처에 산재한다.
전통시대에 서울에서 개성을 거쳐 평양-의주로 왕래하자면 당연히 임진강을 건너야 했는데 주요한 나루가 세 군데였다. 임진각 앞쪽에 놓인 ‘자유의 다리’를 주민들은 ‘독개다리’라고 불렀는데, 이는 물론 근대에 들어와서야 놓일 수 있었던 다리였다. 임진강 본류와 개성 동문 밖에서 흘러내려오는 사천(砂川)의 합수머리가 되는데 상것들이나 건너다니던 나루였다. 서관대로(또는 의주로)는 파주 파평면 율곡리의 임진나루(임진도)를 경유하고 있었다. 중국 왕래의 사행로가 되고 임꺽정이라든가 장길산 따위의 도적패가 관원들과 시비를 붙기도 하던 물목이었다. 더 상류 쪽으로 올라가면 고랑포(高浪浦)가 있다. 고려시대에는 이 포구를 장단도(장단나루)라 불렀다.
파주시 적성면 두지리에서 임진강을 건너 일단 강북으로 올라가면 연천군 장남면이 되는데, 물론 예전에는 이 일대가 장단군에 속해 있었다. 강물은 하염없이 휘어져 돌며 여울목을 만들고 도처에서 벼랑을 만난다. ‘호로탄(瓠蘆灘)’이라는 명칭이 생겨나는데 호로박처럼 생긴 강변 경관이 시인묵객들의 찬탄을 자아냈다. 특히 고랑포는 층층단애의 기암괴석지대를 임진강이 휘어져 돌아나가는 절경지에 자리 잡은 포구였다. 강마을 민속도 풍요로워 당제와 동제는 물론 갯비나리 굿판도 걸판졌다고 한다. 강원도와 경기도의 내륙지역 농특산물들이 집결되고 서해의 조기와 새우젓과 소금을 실은 배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식민시대에는 화신백화점이 이 포구에 3층 건물의 분점을 내기도 했다.
장남면 원당리의 ‘호로고루 성’은 백제의 군사기지였다가 고구려 성이 되고, 다시 신라가 당나라 군사를 무찌르는 사연을 간직한 역사적인 고성이다. 최근에 발굴 조사되어 주목을 받고 있지만 문화재 지정 예고만 해놓고 있을 뿐, 복원은 엄두도 못 내는데 민통선의 제약을 받는 까닭도 있다.
파주 두지리의 강변에는 ‘황포돛대’가 떠있다. 임진강 경승지 일주의 관광선이지만 고랑포 유람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강 건너 장남면 원당리와 고랑포리 주민들의 농사는 여러 제약이 많은 쪽이다. 워낙 낙후된 경기북부 지역을 살리려는 대책의 일환으로 최근 고랑포와 호로고루성을 연계시키는 관광사업 계획이 조심스럽게 거론되지만, 군(軍)·관(官)·민(民)의 합심협력을 얻어내자면 해야 할 일이 태산일 듯.
임진강 농민들의 경제현실도 그렇지만 자연환경도 예전 같은 것이 아니다. 북한의 상류 댐 공사는 완공 단계이고, 남한도 중류 홍수조절지와 한탄강댐 건설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생태계 변화에 대한 걱정도 있다. 시베리아 독수리와 두루미도 최근에는 잘 찾아오지 않아 철새 도래지의 명성도 놓치고 있다. 특산품이던 임진강 참게와 복어 잡이도 줄어든다 하고.
‘분단 유목민’이란 표현을 주민들이 입에 올린다. 과연 어느 세월에 임진강 물이 맑아져 이런 분단 떠돌뱅이들이 제대로 정착을 하게 될 수 있으려는지 저들이 먼눈을 짓는다. 특수 농촌지역 고랑포에 어떻게 하면 ‘새마을운동’이 일어날 수 있으려는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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