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들녘의 가을편지
박태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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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역 개통에 맞추어 2001년 11월 25일 박봉우 시인의 ‘휴전선’ 시비(詩碑) 제막식이 역 앞 광장에서 있었다. 〈사진 : 한국문학평화포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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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갈 적마다 달라져 있다. 파주시의 임진강 일대 풍경은 계속 변모를 거듭한다. 삼엄하던 일선지대의 군인도시로부터 벗어난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2005년에 찾았을 적에는 ‘통일한국의 중심도시’라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는데, 올해는 ‘대한민국 대표도시’라는 브랜드를 내세우고 있다. 산업도시, 문화도시, 관광도시임을 표방하고 있을 뿐 아니라 통일동산·출판도시·예술마을·영어마을 등을 건사하고 우수한 자연환경과 빛나는 문화역사유적을 간직해온다고 자랑한다.
가을에 임진강 일대는 각종 행사들로 넘쳐난다. 파주는 ‘축제도시’로서 온갖 손님들을 불러 모으는 중이다. 헤이리 예술마을과 파주 출판단지에서는 각종 전시회와 문화공연들이 펼쳐지고, 10월 초순에는 율곡문화제가 자운서원과 화석정 일대에서 열린다. 율곡 이이의 고향으로 성리학 기호학맥의 근원지라는 긍지를 표현하고 아울러 장단 콩 축제와 개성 인삼축제, 교하 갈대축제도 벌인다. 추석 전후로부터 10월 하순까지 임진각 일대 평화누리공원이 연속하여 축제 마당이 되고 있다.
장단 콩 축제는 임진강 농민문화의 큰 잔치이다. 옛 속담에 ‘살아서는 파주, 죽어서는 장단’이란 말이 있었다. 큰 고을 장단도호부의 관아는 지금의 경의선 도라산역 부근에 있었다. 해방되기 직전인 1944년 장단군 인구는 6만7천명이었다. 6·25전쟁의 와중에서 유서 깊은 역사도시 장단은 현재 지도에서 사라져버리고, 오늘에는 이 지역의 특산물이던 ‘장단 콩’만이 임진강 명산품 가을걷이 축제로 되살아나고 있다. 그 마당이 여섯마당이다. 알콩마당, 달콩마당, 늘콩마당, 어울마당, 장터마당, 놀이마당….
입주영농과 출입영농으로 농사를 짓는다. 민간인의 통행을 막는 민통선 넘어 비무장지대(DMZ)에 아예 ‘입주’해서 짓는 농업이 있는가 하면, 이와는 달리 ‘출입영농’은 주민들이 ‘출퇴근 농사’라 부르는 ‘영농’이다. 민통선 바깥쪽에 살면서 검문소에서 출근 도장을 찍고 안으로 들어가 농사짓다가 해가 떨어지기 전에 다시 도장을 찍고 나와야만 한다. 아파트도 아니련만 입주니 출입이니 하는 영농은 다른 고장에서는 가당치도 않은 ‘분단시대 농법’일 터.
‘자유의 다리’는 1953년 7월 27일의 휴전협정 당시의 반공포로들의 사연을 간직한다. 이 다리 옆쪽에는 ‘망배단(望拜壇)’이라 부르는 기념물이 설치되어 있다. 북한에서 월남한 이들이 북녘 고향을 바라보면서(望) 갖고 온 음식을 진설하여 성묘 대신으로 절을 올리는(拜) 제단이다. 망배단은 1985년에 세워졌는데 특히 설날과 추석날 전후 무렵이면 이 일대에 인파가 들끓는다.
통일로는 1972년에 개통됐는데 ‘7·4공동성명’의 남북회담이 처음으로 열리던 무렵이었고 ‘임진각’이 또한 이 무렵 건립됐다. 피붙이, 살붙이, 겨레붙이, 푸네기 등의 순우리말은 ‘혈육’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어찌할 것인가. 이러한 혈족들과 헤어져 지내는 이산가족이면서 동시에 실향민, 곧 고향을 잃어버린 이들에게는 임진강 들녘 국토산하가 더욱 새삼스럽게 눈에 밟히기 마련이다. 경의선 철도는 문산역이 임시 종점이다가 2001년 9월 30일 임진강역이 개설되었다. 임진강은 ‘분단의 강’에서 ‘통일의 강’으로 달라져 가고 있다. 임진강에서 띄우는 가을 편지는 풍년의 결실과 평화 염원의 메시지가 될 밖에 없다.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이 편지를 받아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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