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의 목우사자와 바다사자
박태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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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시 추암 촛대바위의 해맞이 풍경. 해안 벼랑과 바위섬과 춤추는 바다의 아침놀은 생명찬가를 부르게 한다.> |
독일의 서정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가을날’이라는 시에서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어 주시고/ 들판에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라고 노래한다.
지난여름을 과연 위대하게 보내어 우리는 이 가을을 맞이하고 있는 중일까. 동해 바닷가는 지난여름의 추억들을 풍요롭게 남겨놓고 있는 쪽이 아니다. ‘해변으로 가요’라는 유행가가 씁쓸하게 떠오른다.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젊음이 넘치는 해변으로 가요./ 달콤한 사랑을 속삭여줘요.” 별이 쏟아지고, 젊음이 넘치고,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던 해변은 이 가을에 그 뒷자리가 지저분하기만 하다. 더구나 농민의 동해, 어부의 동해, 부두 노동자의 동해는 쓸쓸하고 허전하고 고달프기도 하다. 삼척 죽서루에서 만난 어떤 공무원은 탄식한다. 도시인들이 동해안을 아무렇게나 찾아오는데 그러지 말고 좀 더 보람찬 것들을 누려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자연환경의 우수함, 문화역사경관의 탁월함, 해양문화유산의 찬연함을 왜 몰라주느냐 한다.
삼국유사는 단군시대에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라는 벼슬아치들이 있었다고 했다.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록된 강릉단오제, 동해 어촌들의 풍어제와 남근목 축제, 부락제들은 이러한 바람 백작, 비 도사, 구름 도사를 지금도 모시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민속들이 급속히 쇠퇴하고 있다. 그래서 동해안에 산불도 많이 나고 태풍의 피해도 심하게 되는 것 같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천지신명께서 더 이상 이 국토산하를 보호해주려 하지 않는 것만 같다고 말이다.
울릉도에는 신석기 유적들과 고조선 시대 양식의 고인돌이 있다. 고대로부터 울릉도 일대는 ‘지복(至福)의 섬’으로 우러름 받는 우리의 해양국토가 되어오고 있었다. 512년에는 신라 장군 이사부가 울릉도와 독도 일대의 섬 왕국이던 우산국을 원정하여 민족사의 해양영토로 공식 입력하여 역사서에 기록되도록 한다.
목우사자(木偶獅子)는 나무로 만든 사자의 상인데 이사부의 동해원정 탐험 기록에 나온다. 그리스의 ‘트로이 목마’보다 더 탁월한 전술 전략이었다. 그런가하면 독도 일대에는 ‘바다사자’의 일종이라는 ‘강치’가 서식하고 있었다. 물개 무리에 속하고 몸길이는 3미터 내외나 된다. 독도 일대에 흔전만전 떼 지어 살던 이 바다사자가 지금은 멸절되고 말았다. 1904년에서 1911년에 이르기까지 일본인들이 1만400여 마리를 남획해 씨를 말려버리고야 말았다. 당국이 멸종위기로 지정해놓은 1급 동물은 12종이다. 호랑이, 표범, 늑대, 반달가슴곰과 강물에서 사는 수달 등이 포함되지만 바다동물로서는 바다사자가 유일하다.
독도 해양국토를 맨 입으로만 지키자고 할 일이 아니다. 이사부의 목우사자는 문화역사 유산이고, 독도의 바다사자는 자연문화자원이자 유산이다. 바다사자는 러시아 베링해 연안에 지금도 서식하고 있다는데, 이 해양포유류 동물을 유치하여 독도 일대에서 살 수 있도록 생태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이사부의 목우사자를 동해 수호의 마스코트로 선정하라. 동도(東島)·서도 및 주변의 89개 바위섬으로 이루어진 독도의 무인도들에 바다사자 서식지를 마련하라. 사자의 지혜와 용맹이 동해에 있어야 한다. 독도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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