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가 부르는 독립만세 소리
박태순 / 소설가
2006년 5월 24일 오후 4시 30분이었다. 한국문인들이 독도의 동도로 들어가 ‘독도 문화예술축전’을 열었다. ‘한국문학평화포럼’이 주관하였는데 120여 문학예술인들이 독도를 주제로 한 창작시 낭송회를 가졌고 이어서 노래와 판소리, 그리고 해원 춤 공연이 있었다.
사회인의 개인 자격이 아니라 한국문학의 이름으로 독도에 공식 입도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고은 시인은 축시를 통해 독도에 대해 ‘배타적인 황홀’이라 표현하였다. ‘배타적 경제수역’에 놓여 있을지라도 황홀하게 실존하는 섬임을 알리고자 함이었다. 신경림 시인은 ‘국토에서 멀리 떨어져 홀로 있어도/ 늘 우리들 가슴 한복판에 있는’ 독도에 대하여 찬탄했다. ‘국토란 무엇인가/ 조국은 무엇인가/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섬이 독도라 했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 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정인보 작사, 윤용하 작곡의 〈광복절 노래〉는 흙 다시 만져보고 바닷물도 춤을 추는 광복의 감격을 노래한다. 어른님과 벗님은 1905년부터 따져서 40년 동안 뜨거운 피 엉긴 자취를 남긴 끝에서야 ‘팔일오’를 맞이하였던 것이니 이 국토와 해양을 길이길이 지키자고 노래는 거듭 다짐한다.
2008년에 ‘팔일오’를 다시 맞이하는데 〈광복절 노래〉가 더욱 새삼스럽다. 독도에서 독립만세를 불러보아야만 할 사태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은 독도가 계속 독립만세를 불러오고 있었음에도 이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에 반문하게 된다. 어른님과 벗님은 독도의 흙을 다시 만져보고 있는 중인지, 그리고 독도의 바닷물은 과연 광복의 춤을 추고 있는지.
문학 언어들은 독도가 외로운 섬이 아니라 육지의 첨단이며 국토 앞머리의 등대 역할이라는 것을 내세운다. ‘독도 불고독’ 담론은 이 섬의 연속성과 귀속성을 발언하게 한다. 역사의 연속성이고 영토의 귀속성이다. 그리하여 문학은 독도가 부르는 독립만세 소리를 참으로 부끄럽고 황송하게 듣고 있는 중이다. 지금에 이르도록 내 나라 내 땅을 제대로 건사조차 못해온 죄송스러움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인가. 과연 무엇이 문제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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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들이 독도에서 국토 만세를 외쳤다. 〈사진:한국문학평화포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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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사회의 독도와 시민사회의 독도를 일단 분별시키고자 한다. 환언하면 독도와 관련하여 국가가 해야 할 책무를 8.15 이후 역대 정권이 제대로 수행해오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이승만 정권의 일방적인 ‘평화선’ 선언이 긁어 부스럼 격이었다면, 이와 대조되는 박정희 정권의 굴욕외교와 양보는 참으로 어이없는 노릇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이후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역대정권의 갈팡질팡 정책으로 국가사회는 독도의 안녕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이에 묻게 되는 것이 있다. 시민사회는 ‘의병사회형’ 전통을 언제까지나 반복하고만 있어야 하는가. 외교에 유능하지 못하고 국제협약에 무능한 국가가 제 할 노릇 제대로 못해서 시민사회가 애국애족 역할을 떠맡아 ‘독도 지킴이 운동’에 나서게 되는 현상을 더 이상 당연시할 수는 없다.
외교 분쟁 책동이 발생된다면 국가주의-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서가 아니라 국가능력-국제역량을 발휘해야할 일이다. 느낌표를 첨부시킨 ‘대∼한민국’이여, 독도 혼자서만 계속 독립만세를 부르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독도의 자연환경, 문화경관, 역사유산을 시민사회가 함께 지키고 누릴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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