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영원한 별 윤동주 시집
청명한 밤하늘을 바라보면 수많은 별들 가운데 또 하나의 별, 별을 노래하다가 간 국민적 서정시인 윤동주의 시가 떠오른다. 그는 조국의 암흑기에 민족 의지의 정신과 그 기상을 청청하게 빛낸 영원한 겨레의 푸른 별이었기에 그의 시는 늘 우리 가슴에 진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윤동주가 노래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통해 깊은 시의 세계에 빠져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집은 원래 윤동주가 1941년 12월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졸업 기념으로 19편의 자작시를 모은 것이다. 그는 이 시집을 77부 한정판으로 출판하려 했으나 집안 형편 때문에 포기했다.
출판이 여의치 않자 그는 3부를 써서 은사 이양하 선생과 후배이며 친구인 정병욱에게 각각 1부씩 주고, 자신이 나머지 1부를 가졌다. 정병욱은 이 자필로 쓴 시집 원고를 아주 소중히 간직했다가 윤동주가 옥사한 뒤 이 시집을 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시집은 1948년 정음사에서 처음 펴냈는데, 정병욱과 윤동주의 동생 일주가 간직했던 유고 31편이 실렸다. 이후 6·25전쟁 때 누이인 혜원여사가 가져온 유고 및 고인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쓰인 것 등 93편이 실린 증보판이 나왔으며, 1976년에는 또 23편이 추가된 116편의 증보판이 나왔다.
모두 5부로 되어 있는 이 시집의 제1부는 연전을 졸업할 무렵 출판하려던 자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수록한 것이다. 제2부는 일본에서 공부할 때 쓴 것을 중심으로 한 것이며, 제3부는 습작기의 것을 모은 것이고, 제4부는 초기작인 동시를 묶은 것이다. 이 동시의 세계는 맑고 순수하여, 한 젊은 영혼의 외로움이 잘 드러나 있다. 제5부는 산문 및 산문시를 묶은 것이다.
이 시집의 특징은 작품의 제작 연도가 대부분 밝혀져 있기 때문에 윤동주의 정신적 성장과정을 밝히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는 소학교 시절 12살부터 서울에서 간행되던 아동잡지 ‘어린이’와 ‘아이생활’을 정기적으로 구입해서 읽는 애독자였으며, 5학년 때에는 급우들과 함께 ‘새명동’이라고 하는 등사판 잡지를 만들기도 했다.
윤동주는 22세 되던 1938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다. 대성중학을 졸업한 송몽규도 이때 같이 입학하여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며 민족정신과 조국의 독립에 대해 토론했다. 39년 연희전문 2년생으로 당시의 조선일보 학예란에 산문 ‘달을 쏘다’, 시 ‘유언’, ‘아우의 인상화’를 본명 및 필명 윤주(尹柱) 등으로 해서 발표하기도 했다. 같은 해 9월에는 시 ‘달같이’, ‘장미 병들어’, ‘산골물’, ‘자화상’, ‘소년’과 같은 작품과 산문 ‘트루게네프의 언덕’을 쓰는 등 왕성한 창작력을 보였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 본과를 졸업한 그는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1943년 여름방학 중인 7월 10일 송몽규가 독립운동 혐의로 일경에 체포되고, 7월 14일에는 윤동주 역시 같은 혐의로 송몽규가 갇힌 경도 하압 경찰서에 감금되었다. 다음해인 1944년 3월 31일 윤동주와 송몽규는 구형 3년에 징역 2년의 언도를 받고 복강형무소에 복역 중 조국광복을 앞둔 1945년 2월 16일 별세했다. 당시 그의 나이 28세.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 가운데 우리 겨레의 별 ‘윤동주’를 생각하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펼쳐드는 뜻 깊은 독서를 독자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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