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운 회원 〈경남 창원 양곡중학교4-H회〉
시튼을 알게 된 것은 시튼이 지은 ‘아름답고 슬픈 야생동물 이야기’라는 책을 접하면서부터다. 제목만 들어도 내용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나는 ‘아름답고 슬픈’ 의미가 궁금해서였을까, 나에겐 야생동물은 무서운 존재로 다가와 있었는데, 혹시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들어서 한 장, 한 장 읽기 시작했다.
사람은 동물과 다르게 생각할 줄 알고 감정을 표현할 줄 알아 비교가 안될 만큼 훨씬 낫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쩌다 못된 행동을 했을 때 ‘이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란 표현을 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도 사람인 내가 동물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튼 아저씨는 이런 나의 생각을 180도로 바꿔 놓았다.
이 책은 여덟 가지 이야기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 중 첫 번째 ‘늑대 왕 로보의 전설’을 읽으면서 야생동물에게 가졌던 송곳처럼 뾰족했던 내 마음이 고드름처럼 녹아내렸다. 숱한 동물들의 목숨을 앗아간 커럼포의 왕 늑대 로보도 아내만큼은 소중했던 것일까? 많은 사냥꾼을 이기고 독약과 같은 어떤 방법에도 걸려들지 않던 그 위대한 로보가 결국 아내의 발자국을 쫓다가 덫에 걸린 것을 보면서 내 마음도 쓰려오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정말 눈시울이 빨개질 정도였다.
시튼이 동물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 관심을 보였는지 책을 읽으며 깜짝깜짝 놀랐다. 생김새와 표정이 얼마나 세세히 표현이 되어 있는지, 실제로 내가 그 상황을 겪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세상에 둘도 없는 까마귀’를 읽다가 어느 쪽에서는 한 번 더 읽어보기도 했다. ‘은점박이는 매우 영리한 늙은 까마귀이다. 은점박이라는 이름은 녀석의 오른쪽 눈과 부리 사이에 마치 5센트짜리 백동전처럼 은빛이 도는 흰 점이 나 있어 붙여진 것이었다.’ 라는 구절은 마치 시튼 아저씨가 곁에서 그림을 그려주며 들려주시는 것 같았다. 또한 악보로 나타낸 까마귀의 언어를 한 번 따라해 보기도 하고 신기하다는 생각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감동적이었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그들만의 목소리를, 그들만의 몸짓을 개발하여 산다는 것이 정말 신비했다. 부모님이 집을 나설 때 이것저것 당부를 하시듯이 늙은 까마귀도 살아온 경험으로 부엉이한테 먹히지 않는 법을 가르치는 것을 읽으며 사람과 같다는 생각과 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모성애를 가장 진하게 보여줘서 결국 나를 울게 한 이야기는 ‘달려라, 솜꼬리토끼’와 ‘여우의 눈물’이었다. 우선 새끼를 생각하여 어떤 상황이든 대처하는 방법을 차근차근 가르쳐 주는 ‘몰리’를 보며 나는 엄마의 말이라면 무조건 잔소리로 받아들였던 것을 후회하였다. 어른들 말씀처럼 다 자식 잘되라고 그러는 것인데…. 그리고 뱀에게 물려 갈래갈래 찢겨진 솜꼬리토끼의 귀를 볼 때 몰리가 마음 아팠듯이 나한테도 엄마를 아프게 하는 상처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짜증날 때 엄마한테 상처를 들먹이며 신경질을 냈던 것이 떠올라 자꾸만 목이 따끔거렸다.
그 다음 여우 빅슨이 새끼를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던 행동은 어느 드라마보다 더 슬퍼 눈물이 조르륵 흘러내렸다. ‘야생동물의 어미가 가진 사랑과 증오는 오직 진실된 것’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 빅슨의 비장한 행동. 새끼 ‘팁’이 야생의 기질을 못 펴는 고통으로 갇혀 있을 거라면 차라리 독약이 묻은 고깃덩이를 먹게 하여 깨끗한 죽음이 낫다고 결정을 내린 여우 빅슨의 마음은 얼마나 쓰라렸을까. 불치병으로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안락사를 시키는 마음이었을 것 같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는 시튼이 실제로 겪은 이야기로, 모두 사실이라고 한다. 책을 읽고 나서도 야생동물들이 헉헉대며 달리는 숨소리가 자꾸만 들리는 것 같고, 고꾸라져 죽어가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 이제는 나도 야생동물을 보며 ‘아름답고 슬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야생동물은 늙어서 자연사하는 법이 없다’는 시튼의 말은 나한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불의의 사고가 아니라면 사람은 늙어서 죽을 때 자리에 누워 있다가 숨을 거두는데, 야생동물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적에 대항하다가 죽는다니! 사람만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사람처럼 새끼를 보호하며 살아가는 아름답고 슬픈 야생동물은 정말 우리의 가까운 친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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