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15 격주간 제678호>
<이규섭의 생태기행> 석조 유적 삼키는 거대한 나무뿌리

앙코르와트 유적지에는 ‘앙코르의 미소’로 유명한 바이욘 사원, ‘하늘의 궁전’으로 불리는 피미아나카스, 왕궁은 없고 궁터만 남은 코끼리테라스 등 찬란한 유적들이 찬탄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 가운데서도 울창한 열대 우림 속 ‘신들의 정원’으로 불리는 타프롬(Ta Prohm)사원은 자연의 위대함을 확인할 수 있다.

타프롬 사원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의 백미는 씨엠립에서 북쪽으로 6.5㎞ 떨어진 앙코르와트(Angkor Vat)다. 9세기부터 15세기까지 영화를 누렸던 크메르 족 ‘왕도(앙코르)의 사원(와트)’이다. 폐허가 된 사원이지만 인간의 사고(思考)와 현대건축기술로도 풀지 못하는 건축양식으로 역사의 경계를 뛰어 넘는 신화(神話)의 세계다.
앙코르와트는 크메르 왕조 전성기인 12세기 수리야바르만 2세(1113~1150)때 설계하여 37년간에 걸쳐 지었으며 수리야바르만 2세가 사망한 뒤 완성되었다. 14세기 유럽의 르네상스보다 200년 이상 앞서 지은 건축물로 역사적 의미가 크다. 400년 동안 밀림 속에 묻혀 있던 앙코르 유적지를 세상에 알린 이는 1861년 프랑스의 식물학자 앙리 무오. 그의 유적답사 보고서가 발표되자 세계는 감탄과 충격을 금치 못했다.
앙코르와트 유적지에는 ‘앙코르의 미소’로 유명한 바이욘 사원, ‘하늘의 궁전’으로 불리는 피미아나카스, 왕궁은 없고 궁터만 남은 코끼리테라스 등 찬란한 유적들이 찬탄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 가운데서도 울창한 열대 우림 속 ‘신들의 정원’으로 불리는 타프롬(Ta Prohm)사원은 자연의 위대함을 확인할 수 있다.
폐허가 된 사원을 들어서면 산산이 부서진 석재들이 무너진 왕조의 옛 영화를 상징하듯 폭격을 맞은 것처럼 널브러져 있다. 수백년간 밀림 속에 파묻혔다가 모습을 드러낸 석조 유적을 거대한 나무뿌리가 삼킬 듯이 휘감고 있어 오싹한 전율을 느낀다. 스펑이라 불리는 이앵나무, 맹골크로스나무, 자이언트 팜나무, 뱅골 보리수 등 나무뿌리가 사원의 돌탑과 담장, 지붕과 벽의 숨통을 조이듯 휘감고 있다.
거대한 문어가 먹이의 몸체를 휘감고 있는 형상도 있고, 담장에 구렁이가 기어가는 듯한 나무뿌리도 섬뜩하다. 그물처럼 뿌리가 꼬이며 벽면을 타고 내리는 것도 있다. 성벽을 타고 내려온 나무뿌리가 땅바닥까지 파고드는 무서운 힘이 놀랍고 두렵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거대한 나무뿌리가 성벽과 돌 더미를 집어삼키는 장면뿐이다.
사원의 석재에 어떻게 나무가 뿌리를 내렸을까? 식물학자들은 나무 열매를 따먹은 새들의 배설물에 의해 씨앗이 싹텄을 것으로 풀이한다. 사원 건축물의 재료가 모래흙 성분의 사암(砂巖)으로 나무가 자라기엔 좋은 조건이다. 나무에게 물과 영양을 공급하는 숙주기능을 한 석조 사원의 담장과 벽은 결국 나무에게 칭칭 감겨 폐허로 변했으니 나무에게 배신당한 꼴이다. 나무의 입장에서는 대자연으로 돌아가려는 회귀의 몸부림이다.
우람한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선 정글 속에서 폐허가 된 사원을 유네스코 지원으로 복원을 시도했다. 하지만 나무를 제거하면 성벽이나 돌탑이 무너져 내릴 것을 우려하여 복원은 엄두조차 못 내고 현재는 유지 관리만 하고 있다. 더 이상의 붕괴를 막기 위해 나무뿌리를 자르고 시멘트를 바르거나 나무에게 성장 억제제를 놓는 것이 고작이다.
타프롬 사원은 불교의 수호자임을 선언한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위해 건립했으며 12세기 중반서 13세기 초의 건축물이다.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영화 ‘툼 레이더(2001년)’의 촬영지로 알려져 더욱 유명세를 탔다.
왕의 어머니 거처로 사파이어와 루비 등으로 벽을 장식했다는 ‘보석의 방’과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고 아픔을 달래기 위해 만들었다는 ‘통곡의 방’은 옛 사원의 화려함을 짐작케 하지만 자연의 섭리 앞에 무참히 짓밟힌 채 잔인한 폐허로 남았을 뿐이다.  〈이규섭/칼럼니스트〉

 

<거대한 나무뿌리가 벽면을 타고 내려와 땅 속까지 파고들었다.> <영화 ‘툼 레이더’에서 안젤리나 졸리가 서 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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