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01 격주간 제677호>
<이야기 한자성어> 口蜜腹劍 (구밀복검)

입에는 꿀을 바르고 뱃속에는 칼을 품고 있다는 말로
겉으로는 꿀맛 같이 절친한 척하지만 내심으로는 음해할 
생각을 하거나 돌아서서 헐뜯는 것을 비유한 말

‘십팔사략(十八史略 )’에 있는 고사의 이야기이다. 당(唐)나라 현종(玄宗)은 45년 치세의 초기에는 측천무후(則天武后) 이래의 정치의 난맥(亂脈)을 바로잡고 안정된 사회를 이룩한 정치를 잘한 인물로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양귀비(楊貴妃)를 총애하여 주색에 빠져 들기 시작하였다.
그 무렵 이임보(李林甫)라는 간신이 있었는데, 환관(宦官)에게 뇌물을 바친 인연으로 왕비에 들러붙어 현종의 환심을 사 출세하여 재상이 된 사람이다. 이임보는 황제의 비위만을 맞추면서 절개가 곧은 신하의 충언이나 백성들의 간언(諫言)이 황제의 귀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한번은 비리를 탄핵(彈劾)하는 어사(御使)에게 이렇게 말했다.
“폐하께서는 명군(名君)이시오. 그러니 우리 신하들이 무슨 말을 아뢸 필요가 있겠소. 저 궁전 앞에 서 있는 말을 보시오. 어사도 저렇게 잠자코 있으시오. 만일 쓸데없는 말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소.”
이런 식으로 해서 신하들의 입을 봉해 버렸다. 설령 직언을 생각하고 있는 선비라 할지라도 황제에게 접근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임보는 현명한 사람을 미워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질투하여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배척하고 억누르는, 성격이 음험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입에는 꿀이 있고 배에는 칼이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그가 밤중에 그의 서제 언월당(偃月堂) 들어앉아 장고를 했다하면 그 다음날은 예외 없이 누군가가 주살(誅殺)되었으며, 자주 옥사(獄事)를 일으켰으므로 황태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했다. 재상 지위에 있기를 19년 동안에 천하의 난리를 길러냈으나 현종은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안녹산(安祿山)도 이임보의 술수를 두려워했으므로 감히 반란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임보가 죽자, 양귀비의 일족인 양국충(楊國忠)이 재상이 되었다. 양국충도 재상이 되자마자 죄목을 하나하나 들어 현종에게 고하자 이제 서야 깨닫고 크게 화가 난 현종은 명령을 내려 그의 생전의 관직을 모두 박탈하고 폐가망신과 함께 부관참시(剖棺斬屍)의 극형에 처했다.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이임보가 죽은 지 3년째 되던 해였다.
지금까지 수많은 나라가 세워지고 무너지는 가운데 왕성한 부흥을 이뤘던 나라들을 보면 뛰어난 왕 곁에는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있었다. 그들은 왕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거나 주변 분위기가 어수선하면 목숨을 내놓고 직언하며 왕을 위해 헌신했다. 하지만 충신이 있으면 간신이 있는 법. 왕의 주변에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 왕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부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라지지 않고 있다.
〈입 구(口) / 꿀 밀(蜜) / 배 복(腹) / 칼 검(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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