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과 사물을 보는 법 -
같은 시간에 똑같은 세상과 사물을 보면서도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각 사람의 시각과 입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의 생각의 폭과 깊이, 세상 사물을 보는 마음과 관점이 다르고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세상 사물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세상을 살아가려면 길눈을 떠야 합니다. 떠도 바로 떠야 합니다. 눈을 바로 뜬다는 것은 분명한 자기의식을 가지고 사물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즉심시불(卽心是佛)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와 사이에 있었던 일화입니다.
조선의 창업자인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를 보고 “당신은 어찌 돼지같이 생겼소?”라고 하자, 무학대사는 “제가 보기에 대왕은 부처님 같이 보이십니다”하고 응답했습니다. 이 태조가 “어찌 그렇게 보이느냐?”고 되묻자 “돼지 눈으로 보면 돼지로만 보이고, 부처님 눈으로 보면 모든 중생이 부처님으로 보인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어찌 보면 웃기는 이야기 같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먹기에 따라 사물이 달리 보인다는 것이지요.
이런 말을 자주 하기도 합니다. “나무는 보면서 왜 숲은 못 보느냐?”, “숲은 보면서 숲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못 보느냐?”고 말이죠. 그리고 모든 일을 밝고 긍정적으로 봐야지 어둡고 부정적으로 보지 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눈앞에 있는 것, 작은 것에 연연하지 말고 멀리보고 넓게 보라고 훈계를 듣기도 합니다. 이 말들은 사물을 결코 편협하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설명해줍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팔러 장에 가고 있는데 아버지는 당나귀 고삐를 붙잡고, 아들은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한 사람이 “당나귀를 타고 가면 편할 것 아니냐?” 고하자 아버지는 아들을 당나귀 등에 태우고 갔습니다, 그러자 지나가던 노인들이 이를 보고 아버지 대신 아들이 탔다고 나무랐습니다. 아버지는 얼른 아들을 내리게 하고 자기가 당나귀 등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 어린 아들을 뙤약볕에 걷게 한다는 비난이 들리자 아버지는 아들도 태웠습니다. 사람들이 이번에는 당나귀가 불쌍하다며 나무라자 아버지는 당황했습니다. 이를 본 나그네가 한마디 하기를 “그러지 말고 둘이서 당나귀를 짊어지고 가면 될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옳거니, 그게 좋겠다” 하고 당나귀를 짊어졌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 준 기 / 한국4-H본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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